<50+를 위한 심리학 수업>
인간에게 기억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요. 인간에게 기억이 없다면 가장 초보적인 일상생활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기억이 없다면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알아보거나 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당연히 공부를 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처럼 살아가면서 기억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번 강의는 무엇보다도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정이 중심 주제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 전혀 다른 기억을 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감정 때문입니다. 이 말은 현재 내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현재의 내 감정과 비슷한 것들을 기억한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면 지금 나와 남편과의 관계가 좋으면 어떻지요? 신기하게도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었던 일들만 기억이 납니다. 그럼 반대로 배우자와 싸워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어떨까요? 서운했던 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생각이 나지요. 그래서 부부가 싸우다보면 20~30년 전 신혼 때 서운했던 일들까지 들추어내지 않습니까?
이처럼 살아가면서 감정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기억이 살아 있는 한 풀어지지 않은 내 감정이 기억에 영향을 주어 나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방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풀어지지 않은 채 쌓아두기만 했던 감정들은 치매에 걸렸을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사진: Freepik.com
그래서 오늘은 ‘감정을 쌓아두는 것’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추석은 풍성하고 기쁜 날이지만, 그 즐거운 명절이면 쌓였던 감정의 앙금들이 여러 형태의 감정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를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묵은 감정들이 명절을 계기로 터져버렸다고 볼 수 있지요.
얼마 전 상담했던 75세의 여자어르신은 명절만 다가오면 이유없는 어깨 통증으로 고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년에는 추석 전날 녹두전을 부치는데 몸이 유독 힘들었다고 합니다. 근처에 아들내외가 살고 있는데, 집에 있을 며느리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마음을 접으셨고요.
어르신 혼자 힘겹게 전을 부치는데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답니다. 다른 며느리들은 명절 전날 시댁에 와서 잘도 돕는다던데, 나는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도 복이 없나 하고 말이죠. 그동안 고추같이 매운 인생을 살아낸 사람으로서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답니다. 그래도 이혼하지 않고 저들끼리 잘살면 됐다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셨지만 어깨 통증은 계속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이 어르신의 경우 “몸의 질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옛 속담처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표현하지 못한 서운한 감정들이 어깨 통증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통증의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사람이 마치 목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내리누르려고 두 주먹을 꽉 쥐듯이, 자신의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하기보다는 생각이 나는 것조차 막으려고 애쓰다보니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게 되고 그 일이 반복되니까 통증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어깨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명절과 관련하여 과거에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분노나 속상했던 일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옛날 너무 과거의 일이라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표현과 관련하여 임상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쌓아두는 것이 우울증이고, 그런데도 표현하지 않고 쌓아두면 세월이 흘러 화병이 되며, 화병이 왔는데도 표현하지 않고 쌓아두면 치매에 걸린다고 하죠. 이 말은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치매에 걸려서라도 그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는 것인데, 감정을 쌓아두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잘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