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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16. 2017

04. 내 묵은 감정 풀어내기

<50+를 위한 심리학 수업>

건망증의 경우에는 저장된 내용을 인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반면, 치매의 경우에는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단계부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내를 보고 엄마라고 부르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치매는 감정의 억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잠깐 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2015년 가을 박범신 작가가 69세의 나이로 치매소설인 『당신』을 출간했는데,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고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 주호백은 어릴 적부터 윤희옥을 사랑했지만 윤희옥은 김가인이라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1964년 윤희옥이 임신을 하지만 아기 아버지 김가인은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끔찍한 수치였던 시절에 윤희옥을 구원해준 사람은 주호백이었고 그렇게 둘이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호백이 치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평생을 아내에게 헌신했던 주호백은 치매에 걸린 후 아내에게 요구가 많아지면서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다시 말해 치매에 걸린 후 주호백은 평생 동안 억눌러두었던 자기 감정을 무자비할 정도로 쏟아냅니다.

그렇습니다. 임상장면에서는 감정억압이 치매로 이어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복지관 데이케어센터에서 실습을 할 때였습니다. 한 여자어르신이 어떤 남자어르신만 졸졸 따라다니셨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그곳에서 청일점이었던 남자어르신에게 물을 떠다 주고 옆에서 생선뼈를 발라드리더군요. 부부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여자어르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보고 결혼을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6・25전쟁으로 남편이 전쟁터로 갔고 마침내는 전사했습니다.

이 여자어르신이라고 왜 연애 감정이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성적인 욕구도 있었겠지요. 배곯던 시절 시어머니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그런 감정 표현 한 번 못하고 살아왔는데, 치매에 걸린 후 데이케어센터에서 남자어르신을 애인 대하듯 하시면서 매사에 챙겨드리는 겁니다. 이처럼 어떤 감정에 대한 억압이 심하면 그것이 훗날 치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치매 예방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이런 것도 좋겠지요. 쉰다섯쯤 된 여자분이 감정억압과 관련된 저의 강의를 듣고 나서 결혼식을 한 달 정도 남겨둔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제 결혼하면 집을 떠나게 될 텐데. 딸아! 그동안 엄마하고 살면서 서운했던 것 있으면 말해봐. 다 풀고 가야지.”

이분은 자신이 아이들을 잘 키웠고 서로 관계가 좋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딸이 엄마에게 가진 서운한 감정은 없으리라 확신을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혹 지금 말하기가 그러면 글로 써서 줘도 괜찮아”라고 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식탁에 딸이 쓴 편지가 놓여 있더랍니다. 그리고 딸은 일찌감치 출근을 해버린 상태였습니다. 엄마는 떨리는 마음으로 딸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엄마, 나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내 생일에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엄마랑 아빠랑 싸워서 선물도 못 사고 집에 돌아와 너무 속상했어”라는 말로 시작해서 엄마는 기억하지도 못하고 또 그게 마음의 상처가 되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딸이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엄마는 딸이 결혼한 후 두 달 동안이나 딸의 신혼집을 방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가족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래서 묵은 감정들을 좀 풀어내시면 어떨까요? 그것도 힘들겠다 싶으면 “아빠가 요즘 복지관에 가서 ‘심리학 수업’ 강의를 듣고 있는데, 들을수록 너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아빠가 그동안 너희의 감정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매사에 윽박지르고 아빠 생각을 강요해서 미안하다.” 이런 말 한마디만 하셔도 자녀들의 마음속에 쌓였던 감정들이 어느 정도 풀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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