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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17. 2017

0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트렌드 인문학>

기존에 사용하던 시간을 조정하는 나라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이 경제적 이유를 들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교역규모가 확대되면서 세계가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변모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치게 이를 적용한 나라의 경우 해당 국민들의 불편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2012년 10월 28일을 기해 세 시간대로 나뉜 시차를 가운데 중간값을 적용해 하나의 시간으로 통일했다. 섬나라로 분산된 인도네시아 국토의 동서 길이는 자그마치 5,15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는 중국에 버금가는 수치이다.

인도네시아 국토 동서 가장자리에 위치한 지역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다만 기준시를 중간값으로 통일한 결과 베이징 표준시보다 불편함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스리랑카도 자국의 기준시를 사용하다 경제와 교역 영향이 큰 인도의 기준시간에 맞추어 이를 조정했다. 인도 역시 전 국토에 적용되는 기준시를 오래전부터 하나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유럽과 아메리카는 기준시 변경이 드물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국가연합이 2000년 전후로 기준시의 통일과 조정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국토의 동서 길이가 무려 9,000킬로미터에 이르러 모두 열한 개의 시간대로 구분된다. 이에 불편함을 느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0년 이를 다섯 개의 시간 권역으로 줄이고자 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이듬해 두 시간을 줄여 아홉 시간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만약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원래 취지대로 열한 시간이 다섯 시간으로 축소되었다면 국민들의 불편함과 시간의 반경을 줄임으로써 야기되는 유무형의 심리적, 정서적 불안과 손실은 정부가 당위적으로 제시하는 경제적 이익의 크기와 비교하더라도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2013년 5월 22일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도쿄도지사는 현재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기준시를 두 시간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제안한 상태이다. 이노세지사의 주장의 배경은 국제외환시장 개장이 도쿄보다 한 시간이 빠른 호주 시드니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기준시를 두 시간 앞당겨 시드니 시장보다 먼저 개장하자는 취지이다. 당장 이 안의 수용은 미뤄졌지만 일본의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논리라면 적용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이 안건이 채택되어 도쿄가 서울보다 두 시간을 앞당겨 금융시장이 개장된다면 한국이 이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할지도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이유와 목적으로 기준 시간을 조정하고 통일하는 것이 정서적, 자연적, 물리적, 환경적 영향과 비교하여 그것이 합목적성을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물음에 부딪히게 된다. 인간이 지닌 고유 생체리듬과 자연의 시간을 거슬러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 이익에 희생될 경우 그것이 정당성을 지니는가의 의문이다. 그것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이는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철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이 지적하는 것처럼 시장만능주의에 대입해 보아도 자명한 결과이다. 경제적 이익에 인간의 신체리듬과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순환을 인간이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이 당위성을 내세우는 것은 많은 경우 경제적 이익과 그 크기가 늘어난다는 취지이지만 이로 인해 인간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신체적, 정서적, 감정적으로 불안에 잠재적으로 노출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취지에서는 깊게 숙고해야 할 사안이다.

우리는 19세기 초 캐나다인으로 세계 최초 표준시 제정에 큰 힘을 기울였던 샌포드 플레밍(Sandford Fleming)이 다시 현재의 시대로 살아 돌아온다면 이렇게 많은 기준 시간이 뒤죽박죽 엉켜 있는 현상을 보고 쓴웃음을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레밍은 아마도 이렇게 한마디 거들 것이다. “이리 모두 저마다의 시간을 쓴다고 고집한다면 옛날처럼 철도 시간표를 챙기는 것이 아마도 하루의 큰 일과가 될 것입니다.”

인류는 많은 것을 발명하고 창조해왔지만 이를 적용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편익과 이익을 앞세움으로써 원칙이 훼손되고 취지가 퇴색되었던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그 소중한 것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아량과 덕목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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