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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17. 2017

09. 용기란 무엇인가?

<내가 나에게>

속상하거나, 절망감이 밀려올 때 꼭 이 책을 펼쳐보라!
그리고 내게 속삭여라.
"나는 내 삶을 바꿀 수 있어. 내가 원한다면 말이야."

다른 사람의 비판과 지적을 두려워하지 마라.
비판과 지적이 없다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잘못 때문에 좌절과 패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잘못을 경험하지 않으면 옳은 방법을 어떻게 알겠는가?

잘못을 저지른 뒤의 결과는 누구나 두렵다.
내가 구축한 다른 사람의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우리에게 늘 이야기한다.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고 신중해야 해.” 

하지만, 나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
그래서 힘들거나 뜻밖의 일이 발생했을 때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물론 잘못을 해서는 안 되지만, 벌어진 잘못이라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도 어린아이에게 잘못을 지적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공자는 부끄러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생이지지(生而知之)’를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했다.
즉, ‘배우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안다’고 했던 것을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잘못을 바로잡을 줄 아는 공자의 모습에 제자들은 더욱 존경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잘못을 들키지 않고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야말로 신뢰를 잃는 행동이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존중받는다. 

파나마 대통령 리카르도 마르티넬리(Ricardo Martinelli)의 이야기다.
그는 여권에 국장(國章)을 잘못 인쇄한 일로 TV에 나와 공개 사과했다.
4시간이 넘도록 사과가 계속되자 국민이 전보를 보내 그만하라고 건의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멈출 줄 몰랐다.

그때 해외에 머물던 한 자국민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님!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국민이 앞으로 대통령을 믿을까요?”
“제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예, 대통령님, 용서합니다.”

이 장면이 방송에 나가자, 파나마 국민은 모두 흥분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대통령님, 우리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대통령은 카메라를 향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용기 있게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와 용서를 구했다.

사람들은 잘 사과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과하는 것을 약점 잡히는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과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나약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분명히 거만한 것이다. 
거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면 그동안 쌓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면 잘못을 만회할 기회도 잃는다.
무엇보다 잘못에 대한 죄책감 속에 살아야 한다.
또한, 잘못을 덮기 위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거짓말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면 인생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유럽 사람들은 ‘그들’을 신의 사자(使者)로 숭상했다.
‘그들’이 소유한 권력과 지위는 왕이나 국가 지도자보다 훨씬 강했다.
이것은 15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습이며, ‘그들’은 바로 성직자들이었다.
15세기 유럽인은 거의 그들의 신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성하고 숭고한 지위를 가졌고 정치적 권력도 장악했다.

그들은 여성에게 제멋대로 마녀라는 죄명을 덮어씌우고 불에 태워 죽였다.
그들은 돈을 모으기 위해 신도들에게 면죄부를 팔았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증오한 마녀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지한 사람들은 화를 당할까 두려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다.
그는 성직자를 통해 하느님과 소통하는 것을 반대했다.
인간을 구원해줄 대상은 같은 인간인 교황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험난했다.
당시는 교황의 노여움을 사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였다.
그런데도 옳은 일,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꿋꿋이 해나갔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는 종교가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의 굳건한 믿음은 종교개혁 운동이 되어 불길처럼 일었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이것은 ‘엄이율기 관이대인(嚴以律己 寬以待人)’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라는 뜻이다.
자신의 잘못은 용기 있게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해줘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못을 통해 무언가 깨달아야 하고 그 깨달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비판과 지적을 두려워하지 마라.
비판과 지적이 없다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잘못 때문에 좌절과 패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잘못을 경험하지 않으면 옳은 방법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소한 일에 경솔한 태도를 지닌 사람은 큰일을 해낼 수 없다.”
_ 미국의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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