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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18. 2017

02. 장인의 손길 에르메스

<트렌드 인문학>

에르메스의 제도는 분명 옛 왕정시대 황궁과 소수 귀족 계층의 주문을 위탁받아 제품을 생산하던 1830년대의 시장 생산 방식의 원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7년 파리의 페 거리(Rue de la Paix)에 자신의 가게를 열고 의상에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처음으로 부여한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황비인 외제니 드 몽티조(Eugénie de Montijo)와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러시와 귀족들만을 대상으로 맞춤 드레스(Haute Couture)를 판매했다. 에르메스도 주요 고객은 당시 유럽과 러시아에 산재한 왕궁과 황실의 귀족과 상류층 부호들이었다. 이 시기 에르메스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경쟁자인 루이뷔통(Louis Vuitton, 1854)도 모습을 드러낸다.

귀족들의 여가와 사교의 장이자 지체 높은 신분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승마라는 영역에 깊이 관여한 에르메스는 말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군에서 탁월한 기술력과 자질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에르메스의 효시는 퀴퀴하고 통풍도 잘 안 되는 마구간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에르메스가 다루는 제품은 소수 특권층을 대상으로 하는 한정된 물품이었고 그것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하류층의 일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 소수만을 특화하는 유전적 혈맥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하다. 1,160개의 다이아몬드를 2년여의 세공으로 다듬어낸 오뜨 비쥬테리(Haute Bijouterie) 부문은 수공예의 한계치를 시험한다. 보유자산이 세계 0.01퍼센트에 속하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s)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Oligarch)들이 이 소장품의 주인공이다.

에르메스에서 일하는 기능공들의 면면은 이 기업이 지향하는, 대를 이어 장인으로 전수되는 기업의 가족 문화 내력과도 상당부분 닮아 있다. 아버지의 작업을 눈여겨본 아들은 이를 흉내 내고 모방하다 아버지의 관심 어린 지도를 받는다.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간직한 아들의 손놀림에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아들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공방의 장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가 결국 한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에르메스가 지닌 제도(System)가 그 공간에서 숨 쉬는 장인에게로 접목되면서 기업과 그 구성원이 공유하는 지향점과 가치가 함께 영글어가는 과정이다.

에르메스의 파트리크 토마 회장은 5대에 걸쳐 내려온 가족 기업에서 처음 에르메스의 바통을 이어 받았지만 에르메스에 근무하는 장인들은 6대째 기능공의 가족력을 지닌, 가업을 잇는 주인공도 있다. 16세에 공방에 훈련생으로 들어와 37년째 작업을 놓지 않고 있는 중년의 여성 스카프 디자이너, 62세로 43년 넘게 염색 일을 해왔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면 또 새롭게 일에서 배운다고 말하는 대머리 아저씨, 이는 에르메스 공방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지금에 있게 해준 지도 장인의 고마움을 늘 잊지 않는다. 또 그 감사의 내력을 다른 이에게 기꺼이 물려주는 것을 자신의 일이라 여긴다.

프레데릭 라퐁(Frederic Laffont)과 이자벨 뒤퓌-샤바나(Isabelle Dupuy-Chavanat¹)는 이런 장인의 꾸밈없는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고국을 등지고 정치적 망명길에 올라 새 삶을 찾은 중년의 기술자와 초롱초롱한 눈매에 아직 앳된 모습이지만 이 일이 천직이라고 믿는 당찬 포부를 지닌 젊은 여성 지원자도 함께 작업장을 누빈다. 성악가로 승승장구하다 성대에 무리가 와서 목소리를 잃고 새 삶으로 이 일을 택한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삶의 궤적은 다르지만 최고의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들을 이곳에 모이게 한 원천이다.

독자의 손에, 목을 감싼 스카프와 어깨에 들린 에르메스의 제품들은 모두 이런 공정에서 태어난 산물들이다. 묵묵히 자신의 정성을 담아 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제품이 주인과 함께 늘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혹여 문제가 생길 때면 이를 직접 제작한 작업자에게 꼭 돌아오는 시스템은 당연한 덤이다. 그것이 한낱 가죽과 실크일지라도 여기엔 사람과 제품을 잇는 인본주의적 전통이 남아 있다.


3D 프린터가 인체의 장기와 대형 구조물까지도 그대로 복제해 내는 시대에 에르메스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르메스와 루이뷔통의 가죽 백을 90분의 1 가격으로 99.9퍼센트 실재화한 3D프린터가 출력한 버킨 백과 알마 백(Alma Bag)으로 소비자들은 모두 옮겨 가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에르메스의 제품은 모두 패션 박물관에 고이 입성해 유리관 벽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르메스는 시대와 조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고집해 왔다. 그것은 1837년 마구간에서 말굽을 다듬던 거친 손과 세월의 산물들이다. 대를 이어 시스템을 최고의 덕목으로 이끈 에르메스는 어쩌면 가족 기업을 대표하는 상징일 뿐이다. 그렇지만 정직한 제품에 더해 최고의 세공과 혼신을 다한 장인들의 열정은 디지털과 가상세계의 환경에서도 아날로그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슴 먹먹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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