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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2. 2017

03. 더티 잡(Dirty Job)

<트렌드 인문학>

인구 900만 명의 이 나라에서는 모두 349명의 일군을 뽑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내각제로 이루어져 정당에 대한 투표만을 고집할 뿐이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게시하고 정당의 선거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자의 당락이 결정된다. 국민들의 투표 열기는 최근 10년간 투표율 8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정치 참여와 관심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평균 급여 수준은 5만 7,000크로나 남짓으로, 젊은 국회의원에게는 넉넉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중견 간부급의 급여에 비추어보면 한참이나 모자란 금액이다. 스웨덴 민간기업 중견 간부급이라면 6만 5,000크로나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급여를 올리자는 말을 의회에서 쉽게 꺼내지 못한다. 괜히 국민의 눈살을 찌푸려 이를 발의한 정당의 신인도와 인기에 적잖은 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스웨덴은 전쟁의 포화를 슬기롭게 비껴갈 수 있었다. 전 세계를 공포와 살육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1, 2차 세계대전은 인종주의라는 극단의 피비린내로 물들었고 그로 인해 이유 없이 죽어간 영혼들의 외침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주검과 이에 반동으로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블란트(Willy Brandt) 독일 총리의 무릎 꿇은 참회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내부 갈등을 다독거리며 시대(Nazism, Bolshevism)의 조류에 민감했지만 한 발 물러서 대응했고 사회민주주의라는 일관된 신념을 거의 한 세기동안 실험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대가는 실로 컸다. 그것은 소통과 설득, 대결과 갈등을 치유하는 지난한 여정이었지만 국민들은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며 불편함을 감수해줬다. 그 반석이 주춧돌이 되어 쌓아 올린 것이 오늘날 스웨덴의 정치 문화이다.

여기에는 격전의 소용돌이에서 장수 총리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거렸던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on)과 제도적 경제 이론을 접목한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서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총리와 ‘잠정적 유토피아(Provisorisk utopi)’라는 실험 가능한 청사진을 반복하고 수정했던 재무장관의 행보는 스웨덴 복지주의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그렇다면 스웨덴의 가장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공평무사한 정치 시스템은 언제부터 직조된 것일까? 정치 문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스스로 깨우쳐서 되기도 쉽지 않을 터이니 스웨덴만의 고유 DNA가 다른 민족과 우수한 차별성을 지니게 된 연유도 있을 듯싶다. 더불어 그것이 인기 없고 정말 힘든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손은 1932년부터 1946년까지 스웨덴 총리를 역임했지만 사회민주당 내에서 뚜렷한 색채가 없었던 정치인이었다. 그가 총리후보로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은 당시 사회민주당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지녔던 비그포르스였다. 온화한 성품과 서민을 누구보다도 잘아는 그를 눈여겨 본 것이다.

한손은 비그포르스의 지지에 힘입어 사회민주당 당수로 선출된다. 1889년 사회민주당을 창당하고 이끌었던 얄마르 브란팅(Hjalmar Branting)이 1925년 사망하자 사회민주당은 당을 강력하게 이끌 새 인물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한손은 당내 지지도 약했고 무색무취한 보통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그가 당 의장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비그포르스의 강력한 지원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손은 배우지 못한 총리였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제도권 교육을 4년밖에 받지 못했고 점원으로, 사환으로 온갖 허드렛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마디로 최하층 빈민의 생활이 그의 유년시절 기억이었다. 그런 그를 성장시켜준 것은 사회민주당 청년모임(SSU)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유복한 사람이나 차별 없이 대우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한 포용의 정치시스템이었다. 실제로 많은 유수의 정치 지망생들은 각 정당이 운영하고 있는 청년모임을 통해 길러지고 배출된다. 나이가 적어도, 기라성 같은 선배 정치인이 있어도 당수로 선출되는 것이 보통의 정치 문화다.

한손이 비그포르스보다 정치 역량이 적어도 당수가 되는 데 결코 장애가 되지 못했다. 스웨덴은 20대 청년의 일천한 정치 경험도 당 의장에 취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인물이 가진 장점을 시스템으로 소화할 수 없다면 이러한 정치 문화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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