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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2. 2017

04. 맥도날드 행복의 나라

<트렌드 인문학>


지난 60년 동안 인류의 식탁 문화는 그야말로 혁명적 변화를 거쳤다. 그것은 귀족과 중산층의 요리, 하급의 식사로 구분되어 내려온 2000년 이상의 전통과 관습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질서의 수립이었다. 그 혁명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자본주의가 낳은 팽창주의의 산물과 무한경쟁의 논리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심연에는 레이 크록(Ray Croc)이라는 미국이 낳은 야심가이자 세계를 향해 도전장을 내민 전천후 파이터(Fighter)가 자리했다.

이번 회는 문화의 관점을 다룬다. 관점이란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이를 해석하는 배경이다. 맥도날드는 이를 접근하는 양태로 수많은 관점을 포괄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룰 맥도날드를 바라보는 시점은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크게 감지하지 못했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가를 이해하는 데 아주 귀감이 될 내용이다. 자,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얼른 풍덩 뛰어들어가 보자.


2015년 한국 방송계의 커다란 이슈는 먹방, 쿡방(cook放)의 유행이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다 보니 혼자서 밥을 먹거나 귀찮아서 허기를 대충 때우는 일들이 늘어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불리한데 선험적으로 남자가 요리하는 것을 그리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왔던 우리 조상의 정서가 원초적 배경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먹방, 쿡방에서 인기 상한가를 점령한 고수들은 하나같이 대부분 남자들이다. 허세 최현석 셰프부터 그가 라이벌이라 지칭하는 샘 킴도 푸근한 미소로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고 있고, 옆집 아저씨같이 친근한 인상의 백종원은 정작 그보다 유명했던 아내 소유진을 넘어 더욱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셰프테이너(cheftainer)들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혼자서 식탁을 차려 끼니를 해결하려는 외로운 늑대들과 여우들에게는 지친 삶에 한 가닥 위안이 될 반가운 청량제인 셈이다.

오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황제와 귀족의 연회를 담당하는 요리사는 남자들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 사회적 신분에서는 황실에 딸린 직속 수하에 불과했고 황실의 요리를 책임지는 대표 조리장은 혹여 음식에 이물질이 있거나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라고 오해 아닌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그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까닥 잘못 조리된 음식이라면 그 날을 못 넘기고 형장 속 시퍼런 칼날에 목이 달아날 위험한 일에 순순히 나설 여성 요리장이 드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고대 로마와 이슬람을 거쳐 중세 가톨릭, 몽골제국, 명(明)·청(淸) 시대를 거쳐 오면서 여성은 아이와 가정에 필요한 식량과 끼니를 해결하는 조력자였지 한 번도 황실과 제국의 요리 수장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점이다. 그러고 보면 남자 셰프들이 다수 각광을 받는 것은 어쩌면 응당한 일이자 그 순서일지도 모른다. 외식문화가 일상이 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고,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가사 휴직, 육아 휴직이 남녀 공히 일상의 직장 문화가 된 지금, 요리하는 남자는 당연한 역사적 DNA의 계시이자 요리를 고민하는 여자들의 고충을 한 방에 날려 줄 최고의 소통지인 것이다.

이런 먹방, 쿡방 중에서 필자의 주의를 끈 내용이 하나 있으니 <수요 미식회>라는 프로그램에서 버거(burger)를 주제로 다룰 때였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푸드컨설턴트는 참여 패널과의 설전 중 “도대체 햄버거에 뭘 더 바라세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에 응대한 한 칼럼니스트는 가격을 문제 삼았다. 품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 흠이라는 요지였다. 과연 이것이 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이었을까?


작고한 레이 크록이 만약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그는 이 질문에 매우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고 찬찬히 햄버거가 가진 자신의 도전과 신념을 풀어냈을 것이다. 이 질문은 대중이 생각하는 햄버거의 인상과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는 식견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많은 가치가 햄버거에는 들어 있다.

1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만 하더라도 흰 빵과 쇠고기, 제철이 아닌 신선한 채소, 아이스크림, 차가운 음료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햄버거는 귀족들이 누렸던 그 특권을 일반인들에게 아낌없이 공급해준 자본주의와 시장 시스템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햄버거란 비만과 고칼로리를 지닌 트랜스지방을 함유한 패스트푸드라는 정형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1955년 일리노이 주 디플레인즈(Des Plaines)에 첫 맥도날드 프랜차이즈가 선보였으니 지난 2015년은 레이 크록의 집념이 이룬 맥도날드 제국(McDonald Empire)이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67년 캐나다와 푸에르토리코에 첫 해외 매장을 세웠고, 1971년 일본에 상륙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에 한국에도 압구정점을 오픈하며 첫 매장을 열었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119개국에 3만 4,000여 개의 매장에서 미국을 포함해 170만 명의 인원이 근무하며 매일 맥도날드를 찾는 6,900만 명의 손님에게 빅맥과 더블 치즈버거, 프렌치프라이와 코카콜라 등을 제공한다.

이 혁명적인 변화는 단 60년 만에 찾아온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다른 표현으로 이를 풀어낸다면 맥도날드는 IT 업계의 애플이고, 자동차 업계의 포드이다. 실제로 맥도날드 햄버거는 식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생산품이라 해야 더욱 그 성격에 맞는 적절한 이름일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맥도날드는 세계 음식 지형을 다시 썼다. 단 60년 만에 세계 약 120개국에 걸쳐 단일 메뉴로 이렇게 성공한 예는 식품 역사에도 없었고 이러한 시도를 한 예도 없었다. 버거지수(Burger Index)라는, 그 나라의 물가를 판매되는 버거 가격으로 측정해 해당국의 물가 수준과 상대적 통화가치를 판별하는 구매력평가지수(PPP)는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지수로서의 효용성을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툼한 쇠고기 패티(patty)에 신선한 상추와 토마토 슬라이스, 동그란 피클과 양파, 겨자, 달착지근한 소스를 치고는 말랑말랑한 흰빵을 위 아래로 담아낸다. 구매자의 식성에 맞게 치즈 한 조각이나 베이컨이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에 완벽한 온도섭씨 163도에서 조리된 프렌치프라이와 차가운 음료는 환상의 짝꿍이다. 노란색으로 펼쳐진 둥근 아치 로고는 24시간 손님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TV 속 어릿광대 로널드 맥도날드(Ronald Mcdonald)는 춤추며 시청자들을 손짓한다. “어서 오세요 행복의 나라로.”


실제로 맥도날드는 식품 안전성, 품질, 몸에 좋은 식단을 광고하는 일이 없다. 맥도날드는 행복을 차용한다. 심지어 이들의 제품명도 ‘해피밀(Happy Meal)’이다. 아이는 아침마다 엄마를 조른다. “나, 해피밀 먹으러 갈래.” 아침 식단은 ‘맥모닝’이고 점심은 ‘맥런치’이다. 콧물을 흘리는 아이부터 백발의 노신사까지 모두 맥도날드의 헤비유저(heavy user)들이다. 우리가 식당에 들러 메뉴를 고르면 이와는 다르다.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는 ‘자장면’, ‘짬뽕’을, 한국 음식점에서는 ‘비빔밥’과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맥도날드는 ‘아침’을 사고 ‘점심’을 즐긴다. 음식이 아닌 즐거움을 선사하는 쇼 비즈니스를 파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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