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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2. 2017

10. 냉동인간은 부활을 꿈꾼다? (마지막 회)

<4차 산업혁명은 없다>

 나의 모든 친구와 이웃이 그들의 1,00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 나를 초대해주기를 희망한다. 

-로버트 에틴거


영원불멸을 소망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후에 육신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사망할 즈음 분리된 정신과 다시 결합할 수 없으므로 저승에서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시체를 미라로 처리하여 관 속에 안치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사후에 시체의 부패를 중지시킬 수 있는 기술로 인체 냉동보존술(cryonics)이 출현했다. 냉동보존술은 죽은 사람을 얼려 장시간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녹여 소생시키려는 기술이다. 인체를 냉동보존하는 까닭은 사람을 죽게 만든 요인, 예컨대 암과 같은 질병의 치료법이 발견되면 훗날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체 냉동보존술은 시체를 보존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기보다는 생명을 연장하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인체의 사후 보존에 관심을 표명한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다. 미국의 독립선언 직전인 1773년, 그가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먼 훗날 소생시킬 수 있도록 시체를 미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물론 그는 당대에 그러한 방법을 구현할 만큼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문장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1946년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장 로스탕(1894~1997)은 동물 세포를 냉동시키는 실험에 최초로 성공했다. 그는 개구리의 정충을 냉동하는 과정에서 세포에 발생하는 훼손을 줄이는 보호 약물로 글리세롤을 사용했다. 로스탕은 저온생물학(cryobiology) 시대를 개막한 인물로 여겨진다.

과학자들은 1950년에는 소의 정자, 1954년에는 사람의 정자를 냉동보관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세계 곳곳의 정자은행에서는 정자를 오랫동안 냉동저장한 뒤에 해동하여 난자와 인공 수정을 시키게 되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에틴거는 로스탕의 실험 결과로부터 인체 냉동보존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의학적으로 정자를 가수면 상태로 유지한 뒤에 소생시킬 수 있다면 인체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1962년 『냉동인간(The Prospect of Immortality)』을 펴내고, 저온생물학의 미래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냉동시킨 뒤 되살려내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질소가 액화되는 온도인 섭씨 영하 196도가 시체를 몇백 년 동안 보존하는 데 적합한 온도라고 제안했다. 다름 아닌 이 책 『냉동인간』이 계기가 되어 인체 냉동보존술이라는 미지의 의료 기술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1967년 1월 마침내 미국에서 최초로 인간이 냉동보존되었다.

에틴거의 인체 냉동보존 아이디어는 1960~1970년대 미국 지식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히피 문화의 전성기인 1960년대에 환각제인 엘에스디(LSD)를 만들어 미국 젊은이들을 중독에 빠뜨린 장본인인 티머시 리어리(1920~1996)는 인체 냉동보존술에 심취했다. 그는 말년에 암 선고를 받고 자살 계획을 세워 자신의 죽음을 인터넷에 생중계할 정도로 괴짜였다. 1996년 75세로 병사한 리어리는 사후에 출간된 저서인 『임종의 설계(Design for Dying)』(1997)에서 냉동보존으로 부활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리어리의 경우에서 보듯이 인체 냉동보존술은 진취적 사고를 가진 미국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자들을 매료시켰다. 세계 최대의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 기업인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의 고객 중 상당수가 첨단기술 분야 종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1972년 설립된 알코어는 고객을 ‘환자’, 사망한 사람을 ‘잠재적으로 살아 있는 자’라고 부른다. 환자가 일단 임상적으로 사망하면 알코어의 냉동보존기술자들은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들은 먼저 시신을 얼음 통에 집어넣고, 산소 부족으로 뇌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심폐소생 장치를 사용하여 호흡과 혈액 순환 기능을 복구시킨다. 이어서 피를 뽑아내고 정맥주사를 놓아 세포의 부패를 지연시킨다. 그런 다음에 환자를 알코어 본부로 이송한다. 환자의 머리와 가슴의 털을 제거하고,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어 종양의 징후를 확인한다. 시신의 가슴을 절개하고 늑골을 분리한다. 기계로 남아 있는 혈액을 모두 퍼내고 그 자리에는 특수 액체를 집어넣어 기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다. 사체를 냉동보존실로 옮긴 다음에는 특수 액체를 부동액으로 바꾼다. 부동액은 세포가 냉동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감소시킨다. 며칠 뒤에 환자의 시체는 액체 질소의 온도인 섭씨 영하 196도로 급속 냉각된다. 이제 환자는 탱크에 보관된 채 냉동인간으로 바뀐다.

알코어의 홈페이지(www.alcor.org)를 보면 “우리는 뇌세포와 뇌의 구조가 잘 보존되는 한, 심장 박동이나 호흡이 멈춘 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심박과 호흡의 정지는 곧 ‘죽음’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죽음’이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해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상태일 뿐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아직까지 냉동인간을 소생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냉동인간』, 로버트 에틴거, 김영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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