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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2. 2017

08. 연금술과 '생명의 물'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알코올은 안티몬 황화물로 만드는 검은색 화장용 가루라는 뜻의 아랍어 알콜(al-kohl)에서 유래했다. 술의 원료는 중금속이 아니고, 이슬람교 신도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어째서 그러한 단어가 술을 의미하게 되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이 ‘알코올’은 18세기 이전만 해도 기분 전환용 음료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알코올은 어쩌다 술을 나타내게 된 것일까?

모든 일은 일단 연금술이라는 매혹적이고 신기한 분야에서 비롯되었다. 연금술은 한층 고차원적인 지식과 마술적인 힘을 얻기 위해 과학, 종교, 철학을 혼합한 중세의 지식 운동이다. 연금술사는 대부분 영원한 젊음의 묘약이나 철학자의 돌을 얻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지성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들이 했던 실험은 기이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귀족인 베르나르도 데 트레비소(Bernardo de Treviso)는 식초, 달걀, 말똥을 섞은 역겨운 혼합물에 납을 담근 것으로 금을 만드는 데 전 재산과 일생을 바쳤다. 이처럼 연금술은 어김없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으나 그 과정에서 이 세상에 알코올 증류주를 탄생시켰으니 연금술사의 노력이 전혀 무의미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증류주는 엄밀히 말해 중세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보다 2,000년 전에 이미 고대 그리스인이 액체를 증류하는 기술을 발명했고, 그 후 중세 아랍의 학자들은 포도주를 증류했다. 그러나 유럽의 아마추어 마법사들은 증류 실험을 통해 증류주에 불을 붙이면 화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증류주를 아쿠아 아르덴스(aqua ardens: ‘불타는 물’이란 뜻)로 불렀다. 그뿐만 아니라 아쿠아 아르덴스는 햇빛을 받으면 증발했고 몸과 마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음식물의 부패를 늦추는 속성이 있었다. 곧이어 유럽 전역의 지식인 사이에서 새로 발견된 아쿠아 아르덴스가 물, 공기, 불, 흙에 이어 제5원소라는 소문이 퍼졌다. 음식물의 보존 기간을 늘릴 정도로 경이로운 물질이니 사람의 수명도 연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돈 것이다.

13세기 스페인의 연금술사이자 의사인 아르날두스 데 빌라누에바(Arnaldus de Villanueva)는 최초로 포도주를 증류하여 브랜디를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쿠아 비테(aqua vitae: 생명의 물)라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붙였다. 

브랜디는 뛰어난 작명 센스에 힘입어 곧 의학계가 애지중지하는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특히 흑사병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온 유럽이 황폐해졌을 때 기존 약품 대다수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쿠아 비테가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사실로 볼 때 안타깝게도 아쿠아 비테의 효능이 다른 약보다 뛰어났던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증류주를 마시고 두통이 심해져서 상태가 악화된 환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증류주는 아직까지도 약용으로 쓰이면서 약장에서 자기 자리를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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