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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2. 2017

06.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2)

<손바닥 위 미술관>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 作,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The Roses of Heliogabalus)>, 1888년, 캔버스에 유채, 132.7cm×214.4cm, 개인 소장.


그래서 지금
이 안에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황제가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황제와 그의 측근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미꽃에 묻혀서 질식해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여흥 삼아 먹고 마시는 소름 끼치게 잔혹한 연회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의 헬리오가발루스 또는 엘라가발루스(Elagabalus)로 알려진 황제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화가 로렌스 알마-타데마는 고대 로마 황제들의 이야기를 엮은 일종의 역사서인 《황제의 역사(Historia Augusta)》에서 황제 헬리오가발루스의 이야기를 읽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작품을 그렸다.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본명은 바시아누스(Bassianus)로, 그는 지금의 시리아 지역 출신이다. 로마제국의 23대 황제이며, 오리엔트 출신으로서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황제 즉위를 계기로 오리엔트 지역의 화려한 궁정문화가 로마 궁정으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헬리오가발루스 황제, 바시아누스(Bassianus)


헬리오가발루스 황제는 서기 218년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어 22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재위를 지킨 10대 소년 군주였다. 217년 그의 외가 쪽으로 혈연관계가 있던 로마제국의 카라칼라 황제가 암살되자, 카라칼라의 이모는 자신의 손자 바시아누스를 불러들여 로마황제 자리에 앉힌다. 하지만 이 새로운 황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일삼아 항상 구설수에 올랐고, 점차 로마인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연회도 그가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 수많은 엽기행각들 중 하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헬리오가발루스는 원래 제비꽃을 광적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하루는 연회장에서 제비꽃잎을 마구 퍼부어대는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그 연회에서 쏟아지는 제비꽃잎 더미에 깔려 몇 사람이 질식사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제비꽃


알마-타데마는 이 이야기에서 제비꽃을 장미꽃으로 바꿔 화폭에 담아냈다. 당시 그가 활동하던 주 무대인 영국에서 사람들이 장미를 특별히 좋아했기 때문에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그렇게 바꿨다는 설도 있는데, 그보다는 예술가로서의 판단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장미야말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에 잔혹함이 뒤섞인 광기를 동시에 표현하면서 그 강렬한 대비를 극적으로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소재니까 말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 영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국가 위상이 급격히 상승하는 가운데 당시 영국인들은 검소하고 금욕적인 빅토리아 여왕의 영향을 받아 유럽 다른 나라들에게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그 무렵 영국인들이 ‘신사다움’에 집착하던 경향은 지금도 조금 남아 있다. 오랜 기간 유럽문화의 변방 취급을 받아온 영국인들로서는 문화적 정통성과 우월성을 인정받고 싶은 열망이 대단했을 것이다.

그 열망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영국의 건축과 인테리어,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유럽문화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스타일이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했고, 학계에선 고고학의 붐이 일었으며, 영국의 부유층이 유럽 전역을 여행하는 일 역시 이 무렵에 이르러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활기를 띤다. 이때 사람들이 특히 열광했던 여행지 중 하나가 18세기에 발견된 고대 로마 도시유적인 폼페이였다.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산재가 그 일대를 뒤덮으며 그대로 잊혀져 기록에만 존재하던 고대도시가 오랜 세월이 지나 발굴된 것이다. 무려 20미터 정도 두께로 쌓인 화산재 덕분에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를 통째로 온전히 보전한 거대한 타임캡슐이 등장한 셈이었다. 유럽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예술인들 역시 고대 유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앞다퉈 발표했다.

또한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빠르게 발전해나갔다. 탄탄한 기술력 덕분에 나라는 점차 부강해졌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급속한 성장은 전통적 가치의 파괴와 물질 만능주의 등 무시 못할 부작용도 낳았다. 영국 사회에서는 이 부작용에 대한 반발로 철학과 역사 등, 전통적인 가치와 정신적인 문화의 중요성을 지키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번 장에서 살펴볼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는 화가 로렌스 알마-타데마가 1888년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주관한 미술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이 시기에 영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화가인 알마-타데마는 작품 속에 영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여러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일단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이 고대 로마제국의 궁전이고, 구석구석에 고고학적 자료를 참고한 소품들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인물과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자신의 작품에 역사화로서의 가치를 더욱더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화가의 붓을 통해 매끄럽게 빛나는 차가운 대리석 기둥의 질감과 인물들의 피부, 부드러운 장미꽃잎의 질감이 생생하게 표현된 것은 전부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한 알마-타데마의 가치관이 낳은 결과다. 특히 그는 대리석을 표현하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대리석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실적인 묘사에 대한 그의 집념과 노력이 가장 집중된 부분은 바로 인물 묘사였다.

작품에서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 중 맨 왼쪽이 바로 황제 헬리오가발루스이고 그 옆에 화관을 쓰고 앉아 있는 여인이 그의 외할머니 율리아 마에사(Julia Maesa)다.

헬리오가발루스의 조각상, 3세기 제작, 카피톨리니 박물관 소장, 로마.


율리아 마에사의 조각상, 3세기 제작, 펜실베이니아 대학 고고인류학 박물관 소장, 필라델피아.



헬리오가발루스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머리에 사철담쟁이 잎으로 만든 관을 쓰고 있는 여인은 바로 황제의 어머니인 율리아 소아이미아스(Julia Soaemias Bassiana)이고, 그녀 뒤로 보이는 백장미관을 쓴 젊은 여인이 로마제국의 황후 안니아 아우렐리아 파우스티나(Annia Aurelia Faustina)이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이 인물들은 화가가 실제 조각상들을 참고하여 그린 것이다.


율리아 소아이미아스의 조 각상, 3세기 제작, 안탈리 아 고고학 박물관 소장, 안 탈리아(터키).


안니아 아우렐리아 파우스 티나의 조각상, 3세기 제 작, 카피톨리니 박물관 소 장, 로마.

 
한창 연회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평소 표범이 끄는 수레를 타며 사티로스를 종자로 삼아 함께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 속 디오니소스의 모습은 로마 국립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디오니소스 조각상을 베끼다시피 하여 그린 것이다. 


다만 그림 속 사티로스는 실제 조각의 사티로스에 비해 선이 고운 소년처럼 표현되었는데, 정설은 아니지만 헬리오가발루스의 동성애 성향을 암시하기 위해 화가가 일부터 그렇게 그렸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장미를 구하기 위해 따뜻한 지중해 연안에서 자란 장미를 다량으로 채취하여 약 4~5주간 매주 한 번씩 런던으로 보내도록 했다는데, 정말 대단한 열성이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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