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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3. 2017

05.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추진력을 제공한 '명저'

<인간의 길, 10대가 묻고 고전이 답하다>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는 인간 공동체

마르크스, 볼테르, 루소의 사상을 키워 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 다양한 학문의 하모니,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추진력을 제공한 명저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



토머스 모어와 라파엘의 대화

문학가, 정치가, 법률가, 성직자로서 명망 높은 토머스 모어. 그의 《유토피아》는 문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법학, 윤리학, 신학의 성격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불후의 명작입니다. 모어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작중인물로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를 등장시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을 직접 작중인물로 등장시켜 라파엘과의 대담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대화가 소설을 이끌어 가는 까닭에 희곡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유토피아’라는 미지의 섬나라를 체험한 라파엘. 그는 모어에게 이 섬나라가 이상향이 될 수밖에 없는 특징들을 이야기합니다. 모어는 많은 부분에서 라파엘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비판과 반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본래 라틴어로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도달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적인 세상을 의미합니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유토피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섬나라로 그려지는 것도 유토피아의 본래적 의미에 어울리는 설정이 아닐까요? 가상의 공간과 함께 가공의 인물인 라파엘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는 모어의 《유토피아》를 문학작품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영국 정치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정치학의 성격이 강합니다. 언제나 민중의 생계와 형편을 염려하며 고민했던 모어의 입장에서는 군주와 귀족이 결탁하여 민중의 경제적 기반을 착취하는 헨리 8세 치하의 영국 정치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겠지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참다운 쾌락과 재산공유제

유토피아 주민들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쾌락에 두지 않고 “정신적 쾌락”에 두었듯, 모어는 이 책에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참다운 쾌락”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유토피아》 에서 철학과 사회윤리학의 성격이 발견됩니다. 특히 라파엘이 예찬하고 있는 “재산공유제”는 사회학의 특징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 재산공유제는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 2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초대 기독교 교회의 공동체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원칙을 세우고 자신들의 부동산과 동산을 “팔아서” 마련한 돈을 공동체의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유토피아 주민들은 수시로 회의를 열어서 개인과 가정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 필요가 합당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면 ‘필요’의 대상자들 모두에게 재화를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초대 기독교 교회공동체가 유토피아의 원형 모델이 된 것입니다. 또한, 유토피아의 재산공유제는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와 재화의 공동 분배를 주장한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사회주의’에 영향 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어보다 약 300년 후에 활동했던 사람들입니다. 모어의 사상적 영향력이 넓고 크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공공성의 실현과 종교의 자유

《유토피아》 에서는 법학의 성격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평등과 불공정 때문에 민중이 부당한 피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합리적 원칙에 의해 제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비전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법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모어가 살았던 시대의 국민들은 군주가 국교로 결정하여 선포한 종교만을 받아들여야 했으나, 유토피아에서는 어느 누구도 종교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처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다양성에 기초하여 종교를 선택하는 인권을 개인에게 보장하는 측면에서도 ‘유토피아’의 민주적 사회구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선택하는 자유는 현대의 모든 민주공화국 ‘헌법’에 예외 없이 명시되어 있는 조항입니다. 500년 전에 발표된 《유토피아》와 그 속에 담긴 모어의 사상이 절대왕정 시대의 봉건적 질서를 뛰어 넘는 혁명적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 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의 신앙생활을 모범적 종교의 모델로 부각시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유토피아》에서 신학의 성격도 드러나고 있네요. 캔터베리 대주교로서 영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성직자 토머스 모어의 삶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요? 

자연과학까지는 기대할 수 없지만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범주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분야들의 성격이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면서 연합하고 있는 고전! 그것이 바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입니다.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추진력을 제공한 명저

세계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토대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 체제는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사상, 표현, 종교 등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자유’는 국민이 누리는 자유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까닭입니다. 이것은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이 꿈꾸어 왔던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계몽사상가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는 유토피아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선 모습이 아닐까요? 계몽사상가들에게 이러한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을 소망할 수 있도록 희망을 안겨 준 책들 중 하나가 바로 모어의 《유토피아》 입니다.

루이 16세가 통치하던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주의 시대를 열었던 ‘프랑스 대혁명’을 기억해 볼까요?

 1789년에 일어난 이 기념비적 사건의 주인공은 파리의 시민들이었습니다. 혁명의 주체는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볼테르(Voltaire)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등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로부터 받아들인 ‘자유’와 ‘평등’의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혁명의 주체가 되었던 프랑스 시민들의 뇌리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각인시켰던 계몽사상가들! 그들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인간의 이성으로 보았습니다. 이성의 힘에 의해 문명과 역사가 계속 발전하는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인 ‘유토피아’가 인간의 땅에 반드시 건설되리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루소와 볼테르 등의 계몽사상가들에게 인간의 이상향을 향한 ‘진보’와 ‘발전’의 신념을 심어 준 도서들의 목록에서 모어의 《유토피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진보적 역사의식이 후대의 계몽사상가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어 신분제도 중심의 봉건적 질서를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변혁시킨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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