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 미술관>
알마-타데마는 살아있는 동안에 부를 누릴 수 있었던 운 좋은 화가였다. 그의 지갑을 채워준 것은 산업 발달의 혜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자본가들이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이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 대해 느끼던 선망과 열등감 덕분이었다. 알마-타데마는 그들의 콤플렉스를 적절한 선에서 해소해준 인물이었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들은 대부분 고전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에 관해 세련되고 지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이러한 교양은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쌓아온 것이다. 신흥 자본가들은 짧은 시간에 막대한 부를 이룰 수는 있었지만, 귀족들과 같은 교양 수준을 단기간에 체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니 돈이 아무리 많아도 상류사회의 사교모임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풍의 미술품이나 도자기를 소유하거나 집을 꾸미는 일은 돈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귀족적이고 고상한 것처럼 효과적으로 포장하는 소비는 그들의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알마-타데마가 주로 그린 작품의 주제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그의 작품들 중 잘 알려진 또 하나의 작품 <훈련을 받는 클로비스 1세의 어린 아들들>을 함께 살펴보자.
로렌스 알마 -타데마 作, <훈련을 받는 클로 비스 1세의 어린 아들 들(The Education of the Children of Clovis)>, 1861 년, 개인 소장.
이 작품이 소재로 삼은 이야기 역시 만만치 않게 잔혹하다. 프랑크 왕국 클로비스 1세의 왕비 클로틸드는 부르군트의 힐페리히 2세의 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숙부가 자신의 형인 왕과 왕비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조카 딸인 클로틸드마저 죽이려고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클로비스 1세에게로 도망가서 목숨을 건진다. 이때 도움을 받은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클로틸드 왕비가 부모의 복수를 위해 어린 아들을 훈련시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배경지식 없이 이 작품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도로 환락적이고 화려한 고대의 풍경에 먼저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알마-타데마의 작품들이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유미주의(唯美主義)에 충실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유미주의의 캐치프레이즈 :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과 예술을 위한 예술
우리에게는 미인대회의 순위를 매길 때 사용하는 ‘진・선・미’라는 개념이 아주 익숙하다.
그런데 사실 이 세 개념은 고대 서양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심오하고 오래된 미학적 개념이다.
서양 철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인 ‘미’의 가치를 형이상학적인 범주에 속하는 ‘선’과 ‘진’보다 하위에 둔다. 쉽게 말하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사조로서 유미주의에서는 ‘미’를 ‘선’이나 ‘진’과 동등하게 혹은 그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개념으로 본다. 그래서 유미주의에서는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유미주의를 신봉하는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이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철학 파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이 등장한 부자 고객층(게다가 그들은 작품 보는 눈이 비교적 덜 까다로운 고객들이었다)과 유미주의의 유행, 여기에 앞에서 말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이고 검소한 청교도적 삶을 미덕으로 장려하는 분위기에 대한 반발심까지 더해져 비도덕적이지만 아름다운 ‘어둠의 역사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 밖에도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이유가 또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장미꽃 아래 감춰진 잔혹한 진실이라는 극단적 대비가 영국의 사회문제를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국 전체로 보면 국가적으로는 유례없는 번영을 맞이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상실감과 공허함,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다. 사람들은 그런 모순에서 느낀 심리를 이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시대에 뒤처진 낙오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공포를 느꼈다. 여기에 그 당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세기말 증후군까지 더해져 불안감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 作,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The Roses of Heliogabalus)>, 1888년, 캔버스에 유채, 132.7cm×214.4cm, 개인 소장.
<헬리오가발루스 황제의 장미>는 가로 214.4cm, 세로 132.7c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다. 만약 캔버스를 가득 메운 장미꽃 그림을 실제로 본다면 그 대단한 규모에 압도되어 꽃 더미 속에서 향기에 취해 몽롱한 표정으로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저 여인과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개인 소장품이라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그림 속에 등장한 로렌스 알마-타데마를 만나보기로 하자. 화면 오른쪽을 보면 금발 머리에 녹색 옷을 입고 대리석 기둥 앞에 앉아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분노한 표정으로 황실 가족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바로 화가 본인이다.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향락만을 좇아 이런 참혹한 일을 벌인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그려 넣은 것은, 화가가 자신을 일종의 역사적 고발자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