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7만 7,000년 전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KwaZuluNatal)주가 있는 지역에서 살던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사암 절벽에 파인 시 부두(Sibudu)동굴에서 기거했다.
이들은 고도로 발달한 두뇌의 소유자로서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을 터전으로 삼은 다음에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으로 내몰고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이들의 혁신적인 발명품 가운데는 물건을 접착하는 데 필요한 풀과 바느질용 바늘이 있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보를 똑바로 펴는 정도로 침구를 정돈하지만,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침대를 만들기 위해 나뭇잎과 골풀을 모아 일일이 손으로 꿰맸을 가능성이 크다.
고고학자들은 동굴 안에서 1인치(약 2.54센티미터) 두께의 식물성 매트리스와 그 안에 있던 석제 도구, 불에 그슬린 뼈, 동물성 지방 등을 발견했다. 우리 조상이 침대에서 야식으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알다시피 먹지 말라는 과자를 침대 속에서 몰래 먹어치우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드물지만 아무리 깊게 잠든 사람이라도 바스락거리는 과자 소리를 들으면 잠이 깰 수 있기 때문에 새벽 3시까지는 기다렸다 먹어야 뒤탈이 없다. 그러나 선사시대 인류가 야식을 먹으려면 과자 소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눅눅한 동굴 안에 살던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이 동물 뼈에 붙은 살점이 썩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굴 인류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파리, 딱정벌레, 모기를 어떻게 물리쳤을까?
두 가지 상호 보완적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예방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부두 동굴의 원시 인류는 벌레 쫓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야생 마르멜로 나무의 잎으로 매트리스 속을 채웠다. 그 덕분에 말라리아로 죽는 일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파리똥이나 동물 기름으로 매트리스가 지저분해지면 재가 될 때까지 태우고 새로운 매트리스를 그 위에 깔았다. 고고학자들이 7만 7,000년에서 3만 8,000년 전의 식물성 잿더미를 같은 동굴 안에서 15개나 발견한 것으로 볼 때 이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한 해결책이 오랜 세월 동안 효과를 발휘했으리라 추정된다. 따라서 수만 년 동안 침대가 사용되었지만, 이러한 침대는 우리가 쓰는 침대 틀과 매트리스와 침구와 마찬가지로 수명이 영구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부두 동굴
그러나 오크니섬에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스카라 브레이 마을의 유적을 발굴한 결과 고고학자들은 금속 도구를 손에 넣지 못했던 신석기 인류가 선반, 찬장, 옷장, 의자는 물론 침대 같은 반영구적인 가구까지 만들어 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독일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나무를 깎아 만든 가구가 발견되었지만, 숲이 없었던 스카라 브레 주민은 부싯돌로 암석을 깎아 가구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거실에 애완용 공룡이 날뛰고 있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가장 초기의 침대는 벽을 깎아 만든 형태였지만, 그 이후에는 바닥에 고정되었으며 유아용 침대처럼 옆면이 높은 침대가 만들어졌다. 또한 한눈에 보더라도 크기가 다른 침대가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남성용과 여성용 침대를 따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잠을 청하는 일은 고문에 가까웠을 테지만, 그 당시 사람들도 몸이 배기지 않도록 분명 밀짚 매트리스와 부드러운 동물 가죽을 깔고 잤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어떤 침대에는 칸막이가 올라와 있어 일부 고고학자들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실제로 스카라 브레이 주민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에드워드 시대에 현장을 발굴한 고고학자들의 사회 통념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