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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4. 2017

01. 냄새부터 다른 제주

<제주에서 내 집 짓고 살기>

남편이 미술학원 입시강사를 한 지 벌써 6년이 되었다. 덕분에 6년 내내 11월에 있는 결혼기념일도 제대로 못 챙겨봤고, 남들처럼 근사하게 크리스마스날 칼질 한번 하러 간 적이 없었다.

입시가 요이~땅~! 하면 도시락을 두세 개씩 싸주며 혼자서 내조의 여왕 코스프레를 즐겼고 연말에는 나 혼자 치맥을 시켜놓고 각종 시상식들과 건배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도 서운하거나 섭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은 자신을 믿고 잘 따르는 학생들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주려 노력하는 걸 숙명인 양 뿌듯해했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도 잘 알기에 잠깐의 특강 3개월은 그냥 참아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입시 끝에는 보.너.스.가 있으니 나! 라는 아줌마는 잘 참을 수 있었다.

발단은 그해 겨울이었다. 항상 입시가 끝나면 우리 부부는 힘들고 지친 서로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부산, 강원도, 남해 등으로 맛집 투어를 다니며 몸보신 마음보신을 즐기고, 입시에 지친 찌꺼기들을 비워내곤 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입시가 끝나면 어디로 여행을 다녀올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신랑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어이~ 김씨! 잘 있었어?”

예전부터 신랑과 친하게 지내던 누나네 부부에게서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다.

“제주도요? 누나, 제주도로 이사 갔어요?”

제주도? 분명 파주에 사셨는데 웬 제주도?

“그래요? 아, 놀러 갈게요. 하하하, 네~. 안녕히 계세요.”

궁금해서 안달이 난 나는 남편이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물어봤다.

“왜? 왜? 왜? 제주도에 계신대? 거기서 뭐 하신대?”
“몰라.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집 짓고 계신대. 게스트하우스 하신다고….”


오~잉! 원래 숙박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신 분들인데… 굉장히 의외였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집, 내 집, 아니 우리 집을 갖는다는 건 요즘 너무 힘든 일 아닌가. 열심히 안 쓰고 모아도 계속 올라가는 집값은 내 월급과 남편의 월급이 100m 전력질주를 해도 따라갈 수가 없는 금액이고, 또 갖고 있다 해도 내 집보단 은행 집에 가까우니…. 게다가 제주도, 내가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제주도.

“우리 이번에 제주도나 가자!”

내 나이 서른다섯에 드디어 제주도를 처음 가보는구나! 

그 당시 내가 일하던 곳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학원이었는데, 여름방학이 되어 아이들이 “선생님! 저 엄마랑 아빠랑 이번에 제주도 간다요~”자랑할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부러웠는지… 왜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셨으면서 날 제주도에 한 번도 안 데려가셨을까, 라는 약간 유치한 원망도 했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이 마흔에 처음 가보는 제주도는 왠지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을 미루어 지금 하는 것처럼 굉장히 뿌듯하고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을 끊고 우리 부부는 매일 밤 성시경의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들으며 제주도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2월 초, 아직은 차가운 날씨지만 제주공항에서 내가 느낀 건 코가 한 단계 필터링 된 기분이랄까?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도 제주에서의 바람 냄새는 한여름에 마시는 생맥주처럼 시원하고 좋았다.

2013년 2월 김녕해변에서 딱! 요때였는데, 몸과 마음을 홀딱 빼앗긴 제주바다에서 칼바람을 맞아 머리가 따귀소녀가 되어 도, 그저 좋고 좋아 배시시 웃기만 했던… 아마도 이때 제주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감마저 든다.

그렇게 누나네 부부와 몇 년 만에 반갑게 만나 ‘땅’도 구경하고 일목요연한 ‘계획’도 들으며 우리 부부는 하염없이 “부럽다”를 연발했다.

남편과 나는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입시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속을 비워냈다. 쓸데없는 고민들은 대자연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르게 푸른 제주도는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다.

월정리 해변에서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 살 수 있지 뭐,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인데.”

역시 남편 성격답다.

“그럼, 뭐 해먹고 살아?”
“그냥, 뭐… 우리도 숙박업 할까? 아님 카페?”
“….”

그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구체적인 계획이나 그림이 없었다. 그 여행은 우리에게 막연히 ‘우리도 언젠간 내려올 수 있겠구나‘’못 올 곳도 아니지 뭐’하는 마음으로 제주를 가깝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계기라는 것. 다이어트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살다 보면 이 계기 덕분에 우리는 인생을 다른 모양으로 그려나가기도 한다.

한동안 일을 하면서 제주앓이에 그야말로 끙끙 앓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밤마다 잠들기 전 레퍼토리는 ‘가시리 언덕에 올라가 청명한 제주의 하늘을 바라봤던 그때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을 고개를 들지 않고 그렇게 가깝게 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 내 시야에 티끌 하나 안 걸리고 뻥 뚫린 시원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우리는 며칠 밤을 제주에 있던 때로 돌아가 그날의 바람과 냄새, 바다를 얘기하며 선잠을 자야 했다. 어른들 말로 우리 허파에는 바람이, 제주 바람이 제대로 훅~!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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