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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5. 2017

02. 제주에 집 지을 재료를 결정하다.

<제주에서 내 집 짓고 살기>

한참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작게 같이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남편은 대학졸업 후 일찍부터 인테리어 일을 배웠고, 아는 동생이 홍대에서 유명한 바리스타라 그에게 커피 내리는 방법을 배우면서 집에서 드립하는 걸 좋아했다. 한 번씩 입시가 싫증 날 때면 남편은 자기가 인테리어한 멋진 카페에서 커피 내리며 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게스트하우스와 그림같이 예쁜 카페라… 서울 사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전원생활 그림이기도 한 이 계획이 나중에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꿈꾸는 대로 다 이뤄질 줄 알았다. 아무튼 무엇을 할지 정했으니 이제 제일 중요한 ‘돈 계산’이 남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수학적 두뇌 회전은 참으로 취약하다.)

어느 날 남편이 “우리가 직접 집을 지으면 어떨까?”라고 물었다.

아니, 대학교 공동과제전도 아니고, 잔칫집 전 부치는 일도 둘이서는 힘들 것 같은데, 진짜로 직접 지을 생각을 하다니.

계획과 욕심은 제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선배네 게스트하우스가 공사업체와 계약을 했다가 1년이 넘게 공사가 지연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어 실질적으로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많이 미뤄졌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집뿐만이 아니라 제주에 내려온 다른 몇몇 이민자들도 공사업체에 맡긴 후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며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아마 그 얘기를 들은 후, 남편은 인터넷을 쥐 잡듯 뒤져가며 나 홀로 집 짓기에 열을 올리며 계산을 했던 것 같다.

“당신 생각엔 우리 둘이 한다고 하면 얼마나 세이브될 것 같은데?”
“그래도 반은 줄지 않을까?”
“기간은 얼마나 잡고?”
“1년 안에 완성하는 걸로.”
“그런데, 1년을 버리는 거잖아. 안 될 수도 있고, 빨리 지어서 영업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내가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공사업체에 맡기면 평당 450이야. 돈이 너무 부족해. 가서 당장 생활비도 들어갈 거고, 우리가 제주도 가려면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아.”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 가고 싶은 마음으로 밀어붙이고는 있지만, 우리 둘 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당장 그만큼의 현금이 없었다. 지금 전세금을 빼도 턱없이 부족해, 하는 수 없이 어머니론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돌아가시기 전 친정아버지도 건축업을 크게 하셨다. 내 기억 속엔 많은 아저씨들이 동원되어 흙먼지,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쓰며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일하시던 모습이 가득한데, 그런데, 둘이 하자니… 둘… 둘… 둘, Just the two of us!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도 돈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의 정확한 마음은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지어보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꼬임에 넘어간 것 같아 뼈마디가 쑤실 때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 뭐로 지을 건데? 벽돌?”
“아니~ ALC.”
“그게 뭔데?”
“왜, 기억 안 나? 결혼 전에 내가 ALC 조각했던 거 보여줬잖아. 찾아보니까 혼자 집 짓는 사람들이 이걸로 많이 하더라고. 아무래도 크기가 크니까 단수도 빨리 올라갈 거고, 그럼 시공이 빨라지지 않을까? 외국에서도 ALC로 집 많이 짓는대.”

ALC 

시멘트와 규사, 생석회 등 무기질 원료를 고온고압으로 증기 양생시킨 경량의 기포콘크리트 제품을 통칭하여 ALC(Auto Lightweight Concrete)라고 한다. ALC는 1930년 스웨덴에서 처음 개발에 성공한 후 네덜란드와 일본 등에서 크게 발전시켜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건축자재다.

남편은 흥분된 얼굴로 신이 나서 얼른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을 빛과 같은 속도로 검색해 이미지들을 보여주기 바빴다. 내가 보기엔 드라큘라 백작의 새하얀 성처럼 아주 큰 벽돌집 같기도 했고, 언뜻 봐도 몇 단 안 되는데 벽들이 세워져 집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게 거대한 목욕탕 같기도 했다.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단점을 알아야 반박이라도 할 텐데 이미 다 알아봐 놓고 확신에 찬 눈으로 Yes~ 라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남편에게 No! 를 할 수 없었다.

이것이 ALC다.


“그래, 그럼. 나는 뭘 도와야 하는 거지?”
“그냥. 내가 뭐 들 때 같이 들어주기도 하고, 잡아주기도 하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살짝 잡아주거나, 손끝으로 들어주는 정도만 상상했었다. 너무 순진했다!)

그래, 뭘 하든 혼자보단 둘이 낫겠지. 왜 갑자기 뜬금없이 긍정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여기저기 “나 제주도가요”라고 다 얘기했는데, 안 된다는 생각보단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아마추어다 보니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둘이서 그 기나긴 시간을 막노동(나에겐 정말 신성한 단어가 되었다.)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들… 무모하다, 무식하다, 단순하다, 뭐하러 그 고생을 하냐, 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친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누가 돈 주고 그 시간을 사겠다고 해도 절대 팔 수 없는 값으로 환산됐으며, 또 되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ALC로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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