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눈>
미래(未來)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앞으로 올 때’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한자어인 미래를 우리말로 순화하면 ‘앞날’입니다. 그렇다면 미래 예측은 미래로 미리 떠나보는 여행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로 어떻게 떠난다는 것이며, 도대체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용해 타임머신을 만들고 미래로 여행을 떠나자는 그런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가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걸까요? 또한 미래에 닥칠 일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으며, 닥치지 않은 일도 예측 가능합니다. 예측은 할 수 있되, 검증이나 확인을 할 수 없을 뿐입니다. 만약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일생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것입니다. 직접 겪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은 모두가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과학적 추론이나 경제학, 사회과학 등의 모든 이론들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생각, 상상력, 분석, 통찰력 등도 아무런 소용없는 것이 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성적 사고를 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점, 도구와 언어, 상징체계를 사용하는 점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현생인류는 아니지만 약 150만 년 전 홍적세(洪績世)에 살았던 인류는 ‘손재주를 가진 도구적 인간’을 뜻하는 ‘호모하빌리스(Homo Habilis)’였습니다. 인간은 미디어(매개체, 도구)를 이용해 제한적인 자신의 감각을 확장하기도 하고 간접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직접 겪지 않은 것은 간접경험을 통한 추론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가령 조류, 개미, 쥐, 고래 같은 동물들은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의 천재지변이 닥치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수마트라에 사는 원주민들은 이런 동물들의 이동을 보고, 위기를 미루어 짐작합니다. 일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인간은 동물 중에서 아마 감각이 아주 둔한 동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 감각은 둔하지만 대신 이성적 사고와 분석, 통찰력과 판단을 통해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감각으로 느껴 예측하든, 판단으로 예측하든 모두가 예측입니다. 슈퍼컴퓨터로 데이터를 분석해 예측하는 것도 미래 예측이고, 수마트라 원주민들이 동물의 이동을 보고 위기를 감지하는 것도 하나의 미래 예측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미래 예측은 본능으로 감지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으며 도구적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예측을 말합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미래 예측에 있어서 유용한 수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석적·도구적 이성이나 사고가 전지전능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 정보나 합리적 판단으로 그럴듯한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미래 예측은 사실 규명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 주장입니다. 우주의 빅뱅부터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루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 연구자 미시건 대학 밥 베인(Bob Bain)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주장이란 우리가 어떤 정보를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할 때 활용하는 결론, 단언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장의 신뢰성은 직관, 권위, 논리, 증거라는 네 가지 신뢰성 판단기준(claim tester) 가운데 하나에 근거합니다. 미래 예측은 보통 객관적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이루어지며, 직관이나 논리 등의 방법을 사용합니다.-데이비드 크리스천·밥 베인, <빅 히스토리>, 해나무,2013-
미래 예측이 숙련된 미래학자나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선입견입니다. 나 자신의 미래는 점괘가 신통한 점쟁이보다는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나 친구, 혹은 나 자신이 가장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분명 개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운’이나 ‘우연’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객관적 사실의 축적이나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시험에 합격하고, 요령을 피우며 공부를 게을리한 사람은 시험에 불합격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사실 생물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이런 원리를 알고 있다면 콩을 심고 잘 가꾸면 콩이 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고, 콩을 심었는데 미래에 팥이 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충분한 데이터를 갖고 있고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만큼 미래도 잘 보이기 마련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나름대로 그 분야의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가질 수 있기에 그 분야만큼은 누구보다 더 잘 예측할 수 있습니다.
미래 예측은 미래학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면 길이 열리듯이, 노력하면 미래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미래 예측을 잘하려면 좀 더 세련된 기술이 필요할 것입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능력, 트렌드 분석과 객관적 예측 방법론 등이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