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취한 미술사>
피코 <에로스와 프시케> & 다비드 <큐피드와 프시케>
프시케와 에로스 이야기 중에서 화가들이 즐겨 그린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프시케가 등불을 밝히고 잠든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비너스의 복수로 지옥의 잠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고 잠에 빠져버린 프시케를 에로스가 깨우는 장면이다. 물론 이와 다른 장면들을 그린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에두아르 피코가 1817년에 그린 <에로스와 프시케>가 그것이다.
피코의 출세작인 이 작품에서는 어두운 밤이 되면 궁전에 와서 프시케와 잠을 자다가 날이 밝기 전에 떠나는 에로스가 그려져 있다. 에로스는 아직 잠에 취해 있는 프시케를 남겨두고 슬며시 침대를 빠져나오는데, 날이 밝아오자 프시케가 깰까 봐 걱정스러운지 아니면 사랑하는 프시케를 두고 떠나는 게 아쉬운지 뒤돌아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프시케가 뻗고 있는 오른팔은 에로스가 떠난 빈자리를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이 그림은 건축적인 배경을 한 연극무대와도 같은 화면구도와 에로스의 우아한 자세로 매우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즉 신고전주의 회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1817년에 피코가 <에로스와 프시케>를 그린 것처럼 같은 해에 신고전주의의 대가인 다비드도 <큐피드와 프시케>를 그렸다는 점이다. 1817년이면 피코는 30대 초반의 나이고, 다비드는 거의 70세가 된 때였다. 프랑스의 격변기에 정치활동에도 열정적이었던 다비드는 1797년 나폴레옹에게 중용되어 미술계의 최대권력자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함께 추방되어 1825년에 죽기까지 말년의 10년을 브뤼셀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냈는데 이 시기에 <큐피드와 프시케>도 그려졌다.
물론 두 화가가 하나의 신화적 주제를 사실적인 화풍으로 다루었지만 두 그림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피코의 그림이 우아한 연극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면 다비드의 그림은 한창 끈적끈적하게 열애 중인 한 쌍의 청춘남녀가 촬영장 같은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다비드의 에로스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날리며 정면을 응시하는데 침대에서 나오려는지 오른쪽 발을 땅에 딛고 있다. 잠자는 프시케는 떠나려는 에로스를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팔을 에로스의 왼쪽 다리에 걸치면서 몸을 밀착하고 있다. 피코의 그림이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시적이면서도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면 다비드의 그림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떨어질 수 없는 진한 애정 관계를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