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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2. 2017

10. 우리 부부는 계속 현재진행형 (마지막 회)

<육지 촌 부부 제주에서 내 집 짓고 살기>


<13보름>을 오픈하면, 그 동안의 노가다는 모두 보상받을 만큼 유유자적 쉬면서 몸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더랬다.



역시나, 의상만 작업복이 아닐 뿐이지 하루 종일 소소하게 해야 할 일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 편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청소일이 익숙하지 않고 손에 붙질 않아 남편과 동선이 꼬이기도 하고, 닦은 곳을 또 닦기도 하고, 괜히 불안한 마음에 한 번 더 닦으면서 룸 하나에 청소시간이 2시간씩 걸려 점심밥을 거르기 일쑤였다.

4시 입실시간까지 청소를 마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때였다. 아직은 둘이 많이 어설플 때라 방 두 개 청소를 끝내고 나니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편은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보며 넌지시,
“밥 먹고 하면, 안 되나….”

그럼 난 앙칼지게,
“지금 밥이 넘어가!”라고 단칼에 잘랐었다. 

사실 삼식이인 남편이 그만큼 참고 일을 하는 것도 대견한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날 뿐이다. 자기 양말 하나 빨래바구니에 넣을 줄 몰랐던 사람이 지금은 싱크대 청소부터 화장실 청소, 거실 청소 등 여기저기 청소들을 혼자서 기꺼이 잘 해내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구나 하는 생각에 기꺼이 변화해준 남편에게 고마울 뿐이다.



우리 부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우리가 그렸던 집의 디자인이 아직은 미완성 단계라 돈이 모이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해나갈 계획이며, 또 1년에 한 번 내지 두 번은 돈 버는 데만 매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 눈과 귀를 열어 제주라는 섬에 우리 스스로 갇혀 살지 않도록 여행을 계획 중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호주 여행과 스페인 여행을 즐겁게 기다리며, 생전 처음 팔자에도 없던 글이라는 걸 쓰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


청소하다가 멍~ 하니 올려다보게 되는 제주의 하늘


제주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도 내 마음대로 디자인해 내가 손수 지은 집에서 산다고 하면, 다들 좋겠다 부럽다를 연발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였어도 분명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림 같은 멋진 집을 짓고 산다고 하면 부럽고, 부럽고, 부럽다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사람이 저 집을 갖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동안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을까? 고민하며 밤새는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혼자 우는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만 우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측은지심이 아닌 동병상련일 것이다. 비단 집에 관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이나 직장이 될 수도 있고, 가고 싶은 학교가 될 수도 있고, 죽을 만큼 힘든 다이어트로 완성된 멋진 몸매일 수도 있겠다.

집, 이라는 것을 지으면서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절절하게 혹은 절실하게 열심히 했던 것이 있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가 억지로 돈을 주고 시켜도 못했을 것 같은 감당 못 할 육체노동과 기약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과연 이게 될까? 될 수 있는 건가? 나 스스로 불신을 떨쳐내고 강해지게 되는 과정이었던 걸 부인할 수 없다.

연애 기간까지 포함해 남편과 15년을 보내며, 그중 제주에서의 4년은 서로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약간은 슬픈? 계기가 되어주었다. 또, 우리는 4년 동안 24시간이 모자라게 붙어 다니며 공유한 같은 추억을 바탕으로 더욱 쫀쫀해진 부부애를 넘어 전우애를 갖게 되었다.


부부란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말이죠~


우리 부부는 이 모든 일들이 제주라서 시작할 수 있었고, 제주라서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제주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마력으로 우리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조금은 느리고 바보스럽지만 저 푸른 제주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완성할 수 있게 동기를 주었고, 용기를 주었고, 공간을 주었으며, 좋은 인연들과 소중한 추억들을 선물해주었다.

우리 부부가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제주에서 살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육지에서의 35년간 생보다 제주에서의 짧은 4년 동안 나는 올곧이 나만을 위해 살았고, 그 시간은 우리 부부를 다듬어주고 토닥여주었다는 사실에 제주는 우리 부부의 소울메이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계속 별 특별한 것 하나 없이 분명, 그냥 그렇게 바쁘게 살아갈 것이지만, 그냥 그렇게 제주에서 살게 되어 고맙고,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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