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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1. 2017

09. 정식 오픈을 향하여, 날짜 먼저 잡고 보자!

<육지 촌 부부 제주에서 내 집 짓고 살기>


우리 부부가 여지까지 기나긴 시간 일을 해보니, 그래도 일이 제일 빨리 진행이 된 건 무조건 날짜를 먼저 잡고 일을 했을 때였다. 날짜를 정해놓으면 어쨌든 그 시간까지 초인 같은 힘이 발휘되어 죽을 둥 살 둥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지곤 했다.(물론 몸은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13보름을 정식 오픈하기 위한 사이트 작업! 그리고 그 사이트에 들어가는 사진 작업! 모든 사람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우리집을 볼 것이고, 그것이 마음에 들면 예약으로, 즉 우리의 수입으로 연결되는 아주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 날짜를 그냥 턱! 잡았다. 안 그러면 정말 오픈이 더 늦어질 것 같았고, 우리도 더 늘어질 것 같았으며, 펜션을 이쁘게 꾸미는 것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 눈앞에 있는 일들, 각 룸에 있는 모든 데크에 스테인 칠하기, 우리집을 포함한 펜션 외벽에 다시 페인팅하기, 야외 정원 등 달기, 컨테이너 창고 페인팅하기, 돌담길에 꽃 심기, 각 룸마다 대청소 등등 할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우리가 펜션 사진 촬영 날짜를 잡은 걸 다 아는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모든 일들을 도와주었다. 일, 봄 네도 펜션 청소가 끝나면 바로 달려와 청소부터 스테인 칠하기, 페인트 칠하기 등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해주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우리 부부는 너무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한번은 봄이가 흙바닥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부터 시든 잎사귀까지 전부 다 손으로 주워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항상 너저분해 보였던 길이 금세 정겨운 시골길처럼 말끔해지고, 누가 봐도 운치 있는 돌담길이 되었다. 다리 저리게 쪼그려 앉아 일하는 뒷모습에 너무 미안해져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봄이는 오히려 위로를 해주었다.

“언니, 이렇게 해야 사진이 잘 나와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다 해 놓으면 티가 많이 나서 훨씬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보여요. 저도 지금 관리하는 펜션 사진 촬영하기 전에 일일이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줍고, 또 잡풀들 정리 다 하고 한 거예요. 잘될 거예요. 그리고 조식 사진 촬영할 때도 오전에 제가 언니 필요할 만한 그릇이랑 소품들 몇 개 챙겨올게요.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이제 거의 다 했잖아요.”

펜션을 한 번 오픈시켜 본 봄이는 구석구석을 잘 찾아다니며 촬영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꿰뚫어보듯이 일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친구가 없었으면, 펜션 준비가 몇 배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한 번 해본 사람의 경험은 말로 백 번 들은 사람보다 나을 터,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그때의 우리 부부에겐 떨어지지 않는 금값과도 같이 값지고 고마운 것들이었다.

촬영 당일, 처음 조식이라는 것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접시 위에 소시지를 이렇게 놓았다, 저렇게 놓았다를 반복하며 제일 그림 같이 예쁜 플레이팅을 하기 위해 날도 추운데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애를 먹고 있을 때 일, 봄이 선물 보따리처럼 내게 필요한 그릇들을 한 꾸러미 들고 왔다.

부랴부랴 준비한 후 야외 테이블 위에 봄이가 가져다준 그릇들과 함께 구색을 맞춰 세팅을 한 후 촬영에 들어갔다. 나를 찍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장이 콩닥거리면서 떨리는지, 내가, 아니 우리 부부가 결국엔 다 했구나 해냈구나. 이런 거창한 기분도 들면서 쬐꼼 눈물도 날 것 같다가 찰칵거리는 소리에 다시 긴장도 됐다가…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붕~ 떠 있다가 내려왔다가를 반복했다.


13보름에서 브런치



촬영은 늦게까지 이뤄졌다. 룸마다 구석구석, 낮을 배경으로 밤을 배경으로 혹은 조명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참 열심히도 찍어주셨다.

11월 초지만, 전날 비가 와 바람이 불고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반팔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찍는 모습이 너무 열심히 해주시는 것 같아 짧게 만난 인연들이지만, 역시 우린 인복이 넘치는구나 싶어 또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 밤 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바비큐!

바비큐 신을 위해 고기는 물론 평소엔 먹지도 않았던 해산물까지 준비했다. 정말 바비큐 연기가 폴폴 나는 것 같은 연출을 위해, 펜션에서 불 좀 피워본 일씨가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는 빠르게 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다들 지쳐가고 있을 때… 고기 냄새는 콧구멍을 통해 식도까지 타고 들어가고, 기름이 떨어지면서 지글지글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힐때… 촬영이 무사히 다 끝났다. 그리고 오늘 하루 다 같이 고생한 많은 분들을 위해 고기는 다시 구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촬영을 위해 기꺼이 고생해준 친구들, 찌꾸, 뿔리, 일, 봄, 태형 씨, 더위를 많이 타는 남자 포토그래퍼님과 그의 예쁜 아내인 소녀 같은 포토그래퍼님 까지 마음 같아선 일일이 하나하나 고맙다고 손잡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조금 넘사스러워 혼자만의 생각으로 접으며, 달게 소주를 삼켰더랬다.



우리 부부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우리가 열심히 고생해서 이 집을 얻기도 했지만, 소중한 사람들도 함께 얻었기에 그날 술이 참 달고 달았다. 술을 마시는 내내 모두들 이 집이 드디어 다되었다며, 자기 집인 것처럼 기특해했고 기뻐했으며 중간중간 힘들었던 과정들을 상기하며 웃기도 하고 아련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날 펜션 얘기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가 처음에 뭣도 모르고 둘이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쏟아졌던 비난 아닌 비난들… 앞에선 걱정해주는 척하지만 뒤에선 바보 같다고 말하던 사람들에게 우린 바보 같아서 다 했고, 여우 같았으면 못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은 밤이었다. 달도 참 밝은 밤이었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 우리는 <13보름> 정식 홈페이지를 열었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 배려 덕분에 본격적으로 펜션 운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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