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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3. 2017

01.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남편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장난해?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

아침 7시 30분, 도쿄의 어느 아파트.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거실에서 아내가 남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나나세 미유키(가명, 38세)는 출근 전에 세 살짜리 아들과 한 살짜리 딸에게 밥을 먹인 후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옷을 갈아 입히려고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적어도 8시에는 집을 나서야 어린이집에 늦지 않는다. 아니, 그 시간에 나서지 않으면 회사에 지각하고 만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아들은 꼭 이럴 때 말썽을 피운다. “안 먹을래”라고 떼를 쓰며 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빈속으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미유키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 안 먹어도 되니까 한 입만 먹자”라며 아들을 달랬다. “자, 어서 아, 해!”라며 과장스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숟가락을 입에 갖다 대자 아들은 겨우 한 입 받아먹었다. 미유키는 한 입 먹은 것만으로 “우아, 잘했어!”라며 요란하게 아이를 칭찬했다.

‘좋아, 일단 조금이라도 먹었으니, 됐어. 이제 얼른 옷을 갈아입혀야지!’

세 살짜리 아들은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데도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손을 대기만 하면 몸을 뒤집어서 쏙 빠져나가 잽싸게 도망치더니 커튼 뒤에 숨어서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이때만큼은 사랑스러운 아이가 악마로 보여서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안 되지, 안 돼. 지금 화를 내면 울 테고, 그러면 괜히 시간만 더 걸릴 뿐이야. 일단 참자.’

“빨리 옷부터 갈아입자.” 미유키는 아들을 쫓아가서 겨우 붙잡아 잠옷을 벗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다음은 딸 차례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옷을 막 갈아입힌 아들이 똥이 마렵다고 하고, 딸은 컵에 든 우유를 엎질러서 옷과 바닥이 흠뻑 젖고 말았다.

“정말 미치겠네!”


그때 남편은 부엌으로 피해 있었다. 이 힘든 상황은 본체만체하고 설거지를 하며 자신이 마실 찻물을 끓이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미유키의 마음에 살의가 일었다.

‘뭐야, 이 인간은 왜 지금 설거지를 하는 거야? 옆에서 다 보고도 모른 척해?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한가하게 차나 끓이고 있을 때야? 내가 못 살아. 빨리 와서 거들란 말이야!’

아이 앞에서는 일단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차에 빠져 있었다. 홍차든 녹차든 차라면 뭐든지 즐겼다. 적당한 온도로 끓인 물을 붓고 스톱워치까지 동원해서 정확히 시간을 쟀다. 출산 전에는 일하는 틈틈이 맛있는 차를 끓여줘서 좋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계속 자기 취미 생활만 고집하면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났다. 미유키의 이런 마음을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남편은 부엌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들을 먼저 화장실로 데려갈까, 딸이 쏟은 우유를 먼저 닦을까?

“여보! 이리 좀 와봐요!”라고 소리쳐도 남편은 “잠깐만 기다려”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때 미유키의 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결국 이날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호랑이 같은 모습으로 한마디 쏘아붙였다. “지금 장난해?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 이 말과 함께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남편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돌변한 엄마의 모습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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