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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6. 2017

02. '산후 위기'가 닥치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출처:<제1회 임신・출산・육아 기본 조사, 추적 조사(임신기~만 2세 시기)>(속보 판), 베네세 차세대 육성 연구소


임신 중에 남편은 미유키의 남산만 한 배에 대고 기쁜 듯이 “빨리 나오렴”이라고 말을 걸었고,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남편은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마”라며 장바구니 하나도 미유키가 들지 못하게 했다. 넘어지면 큰일 난다며 계단보다 엘리베이터를 찾았고,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가 하면 길을 걷다가 조금이라도 턱이 있으면 손을 잡아주었다.

‘아, 그때는 정말 행복했는데.’

그랬던 남편이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남편 얼굴만 봐도 ‘이 인간아, 나가 죽어!’라는 말만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남편은 출산 후에 쌓이고 쌓인 미유키의 원한을 전혀 모른다. 몇 번 경고도 했지만 남편의 말과 행동이 개선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미유키의 마음의 변화를 대변하는 조사 자료가 있다. 베네세(Benesse) 차세대 육성 연구소가 부부 300쌍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1회 임신・출산・육아 기본 조사, 추적 조사’(2006~2009년 종단 조사) 중 ‘첫아이 출산 후 부부의 애정 변화’를 나타내는 수치가 있다.


배우자에 대한 애정의 변화

출처:<제1회 임신・출산・육아 기본 조사, 추적 조사(임신기~만 2세 시기)>(속보 판), 베네세 차세대 육성 연구소


이 조사에서 ‘배우자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낀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임신기에는 부부 모두 74.3퍼센트였지만, 출산 후 아내의 애정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아이가 만 0세 때 남편은 63.9퍼센트, 아내는 45.5퍼센트였는데, 만 1세 때 남편은 54.2퍼센트, 아내는 36.8퍼센트로 감소했다. 또 만 2세 때는 남편의 하락 폭이 저하되어 51.7퍼센트에 그쳤지만, 아내는 34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이것이 ‘산후 위기’라고도 불리는 현상이다.

임신기의 74.3퍼센트라는 숫자가 과연 높은 것인지 검증해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임신 중에도 4명 중 1명은 ‘배우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유키도 돌이켜보면 결혼했을 때부터 남편에게 살의를 품게 되는 불길한 징조가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하는 업계에서 일하면서도 연애에 적극적이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서 미팅을 하며 화려한 연애를 즐겼다. 그러던 중 거래처에서 우연히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운명적인 재회’라며 곧바로 다시 사랑에 빠졌고 결혼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반동거 생활을 할 때는 남자 친구가 늦게 퇴근하는 미유키를 위해 저녁밥을 차려놓고 기다리곤 했다. 가끔 휴일에 그녀가 완전히 지쳐 점심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면 빨래까지 해주는 다정한 남자였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서로의 어긋난 생활에 질린 남자가 이별을 고했다. 그는 일벌레인 미유키에게 “지금은 괜찮지만 결혼한 후에는 시간제 근무를 하며 집에 있기를 바랐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실연의 상처는 너무나도 컸다. 미유키가 28세 때의 일이었다.

미유키는 베이비 붐 세대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반드시 20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고정관념을 떨쳐내지 못한 그녀는 ‘이제 와서 처음부터 다시 연애를 시작해서 결혼하기는 어렵다’며 거의 포기한 심정으로 일에만 전념하자고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마침 같은 회사에 다니던 아홉 살 연상의 선배가 “늘 열심히 일하네”라고 말을 걸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일이 끝난 자정에 술을 마시며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미유키는 무급으로 야근하거나 주말에 출근해도 선배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한다고 생각하니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았다. 결국 그녀는 간신히 20대의 끝자락인 29세에 결혼했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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