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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7. 2017

04. 남편이 옆에 있었는데도 혼자 출산한 기분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미유키는 임신하기 전부터 남편한테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초산이니 분명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것이고, 출산에는 으레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었다.

남편이 함께 분만실에 들어가기를 바란 이유는 출산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똑똑히 봐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성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고 육아에 협력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통이 시작되고 막상 병원의 분만실에 들어가자 남편은 안절부절못하고 서성댔다. 미유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이성을 잃고 마치 짐승처럼 신음했다. 남편은 그 모습에 환상이 깨졌는지 그 자리를 피해 멀찍이 떨어져 앉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조산사의 권유로 남편이 겨우 다가와 허리를 문질러주기는 했으나 통증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짜증이 난 미유키가 “저리 가요!”라고 소리치자, 남편은 곧이곧대로 분만실을 나가버렸다. 아기의 머리가 나올 즈음 남편이 다시 들어왔지만, 미유키는 ‘혼자 아이를 낳은’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시도 때도 없이 수유해야 했다. 출산 전에는 신생아가 하루에 10~15번이나 젖을 찾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모유로 아기를 키우고 싶었고, 모유의 양도 넉넉했기에 분유를 쓰지 않았는데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모유 수유는 3시간에 한 번씩 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개인차가 있는지 미유키의 아기는 1시간만 지나면 울어대서 젖을 물려야 울음을 그쳤다. 한밤중에도 한두 시간마다 수유해야 하는 탓에 날마다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유 수유를 하면 애착 형성에 좋을 뿐 아니라 영양소 흡수율도 뛰어나다고 했다. ‘영양소’로 보면 모유나 분유가 거의 비슷하지만, 모유에는 분유가 유일하게 흉내 낼 수 없는 면역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아기가 6개월 이상 모유를 먹으면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검증되었다. 또한 생후 6개월까지는 신생아의 뇌신경 세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므로, 젖을 빠는 행동이 턱 발달과 지능 향상에 좋다고 하기에 미유키는 수유하면서 아이에게 열심히 말을 걸었다.

그 무렵 마침 성수기를 맞아 일이 바빠진 남편은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출산 후부터 임신 전의 몸 상태로 회복하기까지의 기간을 산욕기라고 하는데, 산욕부(엄마)는 가능하면 계속 이불 속에 누워서 요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미유키는 한 달 정도 집안일에서 손을 놓고 아기 돌보는 데만 집중하려고 했다. 그만큼 출산에 큰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남편이 휴가를 내서 집안일을 하기로 했는데, 그 남편이 집에 없었다. 그녀는 아기가 잠든 사이에 집안일을 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출산 전보다 두세 배 더 먹는데도 몸무게가 순식간에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친정의 도움을 거부하는 남편

출산한 여성의 10퍼센트가 산후우울증을 경험하며, 최근에는 남편의 약 20퍼센트가 산후우울증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미유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다 산후우울증에 걸리겠다’고 생각한 미유키는 친정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머니와 같이 지내자 여태껏 붙임성 좋았던 남편의 태도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모처럼 도와주러 온 장모에게 “이 접시는 쓰지 마세요”, “빨래는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라며 온갖 트집을 잡으며 불평을 해댔다. 심지어 미유키에게 “언제 돌아가셔? 빨리 가시라고 해”라는 말까지 했다. 급기야 신경 쓰기가 싫었는지 남편은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자기는 집안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어? 일찍 퇴근할 수 있냐고!’

지칠 대로 지친 딸이 걱정되어 도와주러 온 부모를 험담하는데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뿐 아니라 증오하는 마음마저 솟구쳤다. 잠깐 집 근처 편의점에 가려는 미유키를 보고 남편은 “장모님 없어도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곧 이혼해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출산 후에 무리하면 두고두고 고생한다는 조산사의 말을 떠올리자, ‘나를 낳아준 부모님께 도움받는 게 가장 좋은데, 내가 죽어도 좋다는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서 실시한 ‘제5회 전국 가정 동향 조사’(2013년)에서는 아내가 누구에게 도움을 부탁하는지 물었다(복수 응답). ‘출산이나 육아로 힘들 때 도움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을 때 ‘부모님’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46.9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남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37.8퍼센트였다. ‘장기적인 도움’에 관해서도 ‘평일 낮 시간’, ‘첫아이가 만 1세가 될 때까지’, ‘첫아이가 만 1세에서 만 3세가 될 때까지’, ‘아내가 일하러 나갈 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으로 ‘부모님’이 50~60퍼센트를 차지했으며, ‘남편’은 20퍼센트 대에 머물렀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육아든 일이든 친정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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