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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7. 2017

06.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의미가 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후 6개월 정도 지나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할 무렵, 미유키의 짜증과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횟수가 더욱 늘어났다. 아이가 부모의 그릇에 담긴 음식에 흥미를 보이며 먹으려 드는 터에 미유키는 이유식에 가까운 싱거운 음식을 먹었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으면 아이는 당연히 남편의 그릇에도 손을 대려고 했는데, 남편은 그러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폴리탄 스파게티나 그라탱에는 타바스코, 카르보나라에는 후추, 우동에는 고춧가루를 아무 생각 없이 뿌려대는 모습에 미유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미유키의 공상 세계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살인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정도는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서막에 불과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회사에 복직하자 어린이집 세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어린이집에 맡기면 익숙하지 않은 환경 탓에 아이의 몸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6개월 정도는 갑작스런 발열이나 감염증을 각오해야 한다. 장마 때부터 초여름까지는 아데노바이러스 감염증(인두결막열), 수족구병, 포진성 구협염, 초가을부터 초겨울까지는 RS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노로바이러스 등 일일이 다 셀 수도 없다. 감염증마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안 되는 날수가 규정되어 있어서 그 기간에는 당연히 부모도 회사를 쉬어야 한다.

4월이 되고 어린이집에 보낸 지 3일째 되는 날 아이는 열이 38도까지 올랐다. 남편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뒷일은 부탁할게”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출근했다. 미유키는 회사를 쉬고 아이를 소아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남편의 무심한 태도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자신은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꾹 참았다.

미유키의 아이는 어린이집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는데 울고불고하며 엄마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할 수 없이 회사의 육아 단시간 근무 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하루 최저 노동 시간인 6시간 근무로 바꿔서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간 것이다. 날마다 전철이 끊길 시간까지 일했던 결혼 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며 퇴근해 어린이집으로 가면 아이가 “엄마!”라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달려와 매달렸다.

미유키는 ‘이제 돌 무렵이라 한창 귀여울 때인데……’라는 생각과 일의 갈림길에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직장에 다닌다는 것과 부모라는 점은 엄마나 아빠 모두 똑같다. 그런데 엄마만, 즉 여성만 육아의 중압감에 짓눌린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나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인 미유키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보육 교사는 왜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는 걸까? 무조건 엄마만 찾으니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에 당황스러운 기분을 아빠는 평생 모를 것이다.

한편 그녀는 “모든 육아를 엄마인 내가 맡고 있는데 구청의 보육과에서 발송하는 서류는 전부 아빠 이름으로 오다니, 이것도 웃기지 않나요?”라며 서류 봉투의 ‘받는 사람’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만이 끓어올랐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 미유키가 업무 스케줄을 조정하고, 정기 검진도 전부 미유키가 데리고 갔다. 남편은 아이에 관한 일을 아내에게 완전히 일임했다. 미유키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간혹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는데, 그것만으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인 척했다. 요즘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아빠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의 역할이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제5회 전국 가정 동향 조사’(2013년)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가사 및 육아 분담’에 관해 정리했다. 


남편과 아내의 가사 및 육아 분담

출처 : 〈제5회 전국 가정 동향 조사 결과의 개요〉(2014년 8월 8일 공표),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아내의 연령별로 본 가사 분담 비율


가사 종류별로 주 1~2회 이상 집안일을 수행한 남편의 비율


육아 종류별로 주 1~2회 이상 육아를 수행한 남편의 비율


아내의 하루 평균 가사 시간은 평일 280분, 휴일 298분이었으며, 가사 분담 비율은 아내가 85.1퍼센트나 차지했다. 아내의 연령별로 보면 가사 분담 비율이 100퍼센트인 부부도 29세 이하에서는 10.7퍼센트, 30~39세 17.1퍼센트, 40~49세 23.8퍼센트, 50~59세는 23.5퍼센트였다. 아내의 가사 분담 비율은 90~99퍼센트가 가장 많았으며, 모든 연령층에서 40퍼센트 전후를 차지했다. 일주일에 1~2회 이상 남편이 하는 집안일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쓰레기 버리기’(40.6%)와 ‘장보기’(36.6%)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육아 분담 비율은 아내가 79.8퍼센트, 남편이 20.2퍼센트를 차지하며, 그 내용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주 1~2회 이상 육아를 수행한 남편의 비율 중에서 ‘아이와 놀아주기’(87.5%)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목욕시키기’(82.1%)였다. 다시 말하자면 ‘가장 쉬운 일’만 골라서 할 뿐이며, ‘어린이집 등원 및 하원’(28.4%)이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런 현실에 미유키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보다는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일해서 야근을 하지 않고 제시간에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등원만 해주는 아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유키가 남편에게 “내 친구 남편은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직접 데리고 온다고요”라고 불만을 드러내자,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데? 한가한 사람인가 보네”라며 잘난 척하듯 말했다. 이때도 그녀는 ‘당신 같은 인간은 이제 그만 죽어버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니야, 그러면 안 돼. 이런 인간의 도움이라도 필요하니까. 그냥 내가 참자, 참아’라며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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