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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7. 2017

05. 아내의 육아휴직을 부추기는 '성 역할'의식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미유키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문제로도 남편과 다퉜다. 아이가 5월에 태어났으니 어린이집에는 이듬해 4월에나 보낼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워낙 일하고 싶어 하던 미유키는 1년이나 쉬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서 가능하면 6개월 안에 복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6개월이나 1년만 육아휴직 신청해요”라고 하자, “그러다 해고당해. 좌천당하면 좋겠어?”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후배 사원은 남자인데도 2개월 육아휴직을 냈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왜 못 한다는 거예요?”라고 따졌더니, “20대와 40대가 같은 줄 알아? 상황이 다르다고”라며 꺼렸다. “당연히 여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라고 받아치자 “그럼 수입이 줄어도 좋다는 거야? 당신이 먹여 살릴 거야? 육아휴직 때문에 강등되면 어떡할래?”라고 정색했다.

나이도 더 많은 만큼 연봉도 남편이 훨씬 높았기에 미유키는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연말까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보면 여성은 49.1퍼센트에서 86.6퍼센트로 상승했지만, 남성은 0.12퍼센트에서 겨우 2.3퍼센트로 늘었을 뿐이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장 분위기도 있지만, 남녀의 연봉 차이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국세청의 ‘민간 급여 실태 통계 조사’(2014년)를 보면 전체 평균 급여는 남성 514만 엔, 여성 272만 엔이다. 남녀 모두 가장 높은 30~34년의 근속 연수로 따지면 남성 739만 엔, 여성 401만 엔이다. 그러나 남성은 5~9년 차에 연봉 456만 엔으로 순식간에 여성을 앞지르는 실정이다.

육아휴직 급여는 6개월 동안 월급의 67퍼센트를 받고, 그 이후에는 50퍼센트로 줄어든다(육아휴직 급여는 1년 동안만 지급된다). 연봉이 높은 남성이 휴직할 경우 수입이 크게 감소해 그만큼 가계를 꾸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남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결국은 미유키가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전업주부와 같은 생활을 보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기는 했지만 완전히 ‘젠더 롤’이 생기고 말았다.

젠더 롤(gender role)이란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을 말한다. 직장에서 일하던 아내의 생활 패턴이 육아휴직 기간 동안 전업주부로 바뀌고 남성이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아내가 복직한 후에도 집안일이나 육아를 그대로 떠맡는 경우가 많다.



현재 도쿄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맞벌이 부부를 관찰해 온 70대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에는 어떤 의미에서 남편이 편하게 지낼 수 있어요. 그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막상 아내가 복직하면 남편은 급격한 변화를 못 견디고 당황하죠. 대부분의 엄마들이 4월에 복직해요. 그래서 4월에는 아빠도 긴장하고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에 참여하기 때문에 5월의 연휴까지는 부부 사이가 원만한 편이죠. 하지만 아이가 점점 어린이집에 익숙해지면 남편은 ‘내가 없어도 괜찮겠다’고 여긴답니다. 아이가 생길 무렵에는 남성도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비교적 큰 업무를 담당하게 되잖아요. 그러니 아무래도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죠. 그래서 아빠가 야근하거나 회식에 참석하는 바람에 모든 부담을 떠안은 엄마의 분노가 6월~7월에 폭발해서 이럴 바에야 이혼하자며 싸우는 겁니다. 엄마의 복직에 대비해 육아휴직 기간 동안 부부가 집안일과 육아에 서로 협력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육아는 서비스인가?

마치 이 원장의 말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체력을 회복한 미유키는 여태껏 해온 대로 집안일을 했다. 남편은 아내가 밥을 차리고 출근하는 자신을 배웅해 주며 저녁에도 귀가하는 자신을 맞아주는 생활이 내심 좋은 듯 보였다. 휴일에 “가족 서비스야”라며 열심히 아이와 놀아주고 집안일까지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미유키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가족 ‘서비스’? 이 남자는 전업주부랑 결혼했어야 했어.’
이런 생각이 미유키의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남편의 ‘가족 서비스’에 응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아이를 맡기고 혼자 외출해도,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남편의 전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건 마치 의사나 간호사의 ‘상시 대기 상태’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냉동해 둔 모유를 데워 젖병에 담아 먹이면 되는데도 남편은 “젖을 안 먹고 계속 울기만 해”라고 호소했다. 젖을 물려 키우는 아이가 젖병으로는 잘 먹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미유키가 연습 삼아 유축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 줬을 때 먹지 않은 적이 없다. 남편이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워 눈앞에서 젖병을 물려보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긴장한 채로 조용히 젖병을 아이의 입에 갖다 대기만 했다. “지금 뭐 해요? ‘맛있지? 자, 아, 해봐’ 이런 말이라도 해야죠!” 그녀는 젖 먹이는 방법까지 가르쳐야 했다.

몇 번이나 연습한 끝에 남편은 겨우 젖을 먹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안아주는데도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미유키가 혼자 외출하려고 하면 남편은 “애가 울어서 나 혼자는 못 보겠어. 데리고 나가”라고 한심한 소리를 하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이 정말, 도대체 누구 애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휴, 속 터져. 관두자, 관둬.’

결국 미유키는 남편이 쉬는 날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기는커녕 늘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외출해야 했다.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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