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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8. 2017

07. ‘주택 구입’이라는 전환기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미유키는 더 이상 남편이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둘째가 갖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이가 있는데 이제 와서 이혼한들 나이가 많으니 재혼해서 임신하기도 어려울 거야. 그럼 일단 지금의 남편과 둘째를 갖는 수밖에 없잖아?’

그녀는 그럭저럭 잠자리해서 둘째를 임신했고, 원하는 것을 전부 손에 넣었다. 언제 이혼하면 좋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들을 키우며 혼자 생활을 꾸려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딸까지 태어나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눈이 핑핑 도는 나날을 보냈다. 여동생이 생기자 아들은 질투심에 점점 더 응석을 부렸다. 미유키가 화장실에 갈 때조차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왔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엄마만 찾았다. 여동생에게 젖을 먹이면 아들도 가슴에 달라붙었다. 아들이 찰싹 달라붙어 있을 때 남편이 딸을 봐주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필요할 때 남편은 귀찮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마치 아이를 위하는 척 “엄마가 더 좋지?”라며 미유키에게 억지로 떠넘겼다.

최근 들어 따뜻한 밥과 된장국을 몇 번이나 먹었던가?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나면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엄마 제비가 새끼 제비에게 음식을 계속 날라다가 입속에 넣어주는 것과 같았다. 자신은 늘 뒷전으로 미루고 제대로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생선구이는 일일이 뼈를 발라내야 하니 먹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먹고 싶네. 현미밥이라도 천천히 씹어 먹고 싶어. 30분이라도 좋으니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 봤으면 좋겠다. 느긋하게 앉아 신문도 읽고 싶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어. 아이를 돌보느라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대충 머리를 감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천천히 머리도 감고, 미용실에 가서 커트도 하고 싶어. 갓 뽑은 뜨거운 커피도 마시고 싶은데 아이가 매달리면 위험하니까 안 되겠지.’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남편은 아주 쉽게 하고 있잖아?’

남편이 40대 중반이 되자 언제 주택 융자를 받지 못하게 될지 몰라서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때 미유키는 ‘단체신용 생명보험의 경우 계약자가 사망하면 융자금 상환 의무가 사라져 이혼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미유키는 은행에서 설명을 듣는 동안 자신이 남편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재무설계사도 “남편분 앞에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일찍 돌아가실 때를 대비해 융자는 최대한 많이 받고, 상환 기간은 되도록 길게 잡는 것이 이득이에요”라고 속삭였다. 물론 영업용 멘트였겠지만, 그래도 미유키는 ‘역시 그런 방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부부의 온도 차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런 것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아내는 진심으로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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