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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8. 2017

08.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남자들에게도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것이고, 여러모로 숨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남자들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잔혹하게 들리겠지만 결국은 아내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실제로 아내는 남편이 집안일이나 육아를 얼마나 해주기를 바랄까? 개인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전제로 이상형에 가까워 보이는 남성의 예를 소개하겠다.

교육 관련 단체에 근무하는 야마노 마사토(가명, 46세)는 온화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집안일을 ‘둘 중 한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아무리 집안일을 해도 아내가 행복을 느낀다고 장담할 수는 없죠. 그럴 때는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이나 분담 방식을 정해 두면 좋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마사토는 이렇게 생각했다. ‘연봉을 2, 3천만 엔씩 충분히 받으면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가 될 필요도 없을 거야. 일에 전념해서 연봉 5천만 엔을 목표로 하고, 집안일은 아내가 하거나 가정부를 고용하면 되겠지.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은 얼마 안 되는 연봉이 한계니까 집안일도 남자가 해야 해.’

마사토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후, 25세 때 대학 동창생과 결혼했다. 아내는 최근에 회사를 그만뒀지만, 결혼할 당시에는 음식 관련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다. 부부는 사이타마(埼玉) 현의 조용한 지역에 살았는데 주위에 농장이 많아서 아침 일찍 딴 과일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지역에서 나는 채소로 요리하며 술 한잔하는 게 낙이었다.

매년 2월은 마사토가 최고로 바쁜 시기여서 회사 근처 호텔에 일주일 이상 묵으며 생활했다. 6월은 출장으로 꽉 차서 열흘에서 보름 동안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다른 달에도 출장이 많아서 그는 가능하면 평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다.

일요일이 되면 마사토는 그날 먹을 밥을 지으며 ‘내일은 무슨 음식을 만들까?’ 하고 식단을 짰다. ‘좋았어, 토란 조림을 만들자.’ 그는 완성된 요리를 밀폐용기에 보관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주말에 일주일 식단을 짜고 먼저 퇴근한 사람이 저녁을 차렸다.

마사토가 스물여덟 살에 첫아이가 태어났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얻었지만, 아이가 신생아였을 때는 언제든지 보살필 수 있도록 마사토가 아기 침대 바로 옆에서 잠을 잤다. 아이가 울면 안아주고 “쉬했어?”라고 아이를 달래며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육아를 즐겼다. 문득 아이가 벽을 붙잡고 서서 방긋방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볼 때면 마사토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요리도 변함없이 마사토가 담당했다. 일요일이면 장을 보고 생선은 된장에 절여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이유식용 육수를 우려내 얼음 틀에 부어서 얼렸다. 육수 얼음 하나가 딱 15밀리리터여서 쓰기 편하다. 얼린 육수는 냉동 팩에 넣어서 보관해 두었다가 죽을 끓일 때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밥을 먹을 때 내가 없어도 아빠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거야.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겠지?’ 그는 요리하는 동안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었다.




‘남자 아줌마’를 즐기다.

마사토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도 가능한 직접 했다. 하지만 운동회 같은 행사에는 일 때문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적어도 아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 느끼고 싶은 마음에 연락장은 날마다 마사토가 적었다. 보육 교사가 “아버님과 교환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라고 할 정도로 연락장에 꼼꼼히 기입했다.

아침 식사 준비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일도 마사토의 몫이었다. 아내는 출근하기 전에 화장 등으로 시간이 걸리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며 개의치 않았다. 아이를 깨우고 아침밥을 준비해서 먹인 다음 열이 있는지 재어보고 옷을 갈아입히고 난 후에야 자신도 출근할 준비를 했다. 이 모든 일이 1시간 안에 끝났다. 연락장을 기입하는 것도 이때였다.

아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마사토가 휴가를 내고 간호했다. 아이들은 늘 갑자기 열이 나기 때문에 평소 언제 쉬어도 일에 지장이 없도록 마감 기한에 여유를 두고 일을 끝냈다. 유급 휴가 기간이 전년에 이월된 것까지 합쳐서 40일이나 있어도, 연말이면 겨우 하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자칫 자신이 감기에 걸려서 소중한 휴가를 써버릴 수 없었다.

마사토 부부는 각자 일의 기복이 있었는데, 서로 미리 스케줄을 알려주고 조정하면 싸울 일이 없었다. 일찍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저녁까지 준비했고, 천연 육수를 우려서 된장국을 끓였다. 평소 이런 식이었기에 마사토는 어린이집 ‘아이 엄마들’과 많이 사귀었다.

마사토는 자신을 ‘남자 아줌마’라고 부른다. 장바구니가 어울리는 남자도 좋지 않은가? 모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고려해서 집안일이나 육아에 대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마사토는 자신의 육아를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더 친절한 경향이 있어요. 그런 친절을 ‘받아들여서’ 소아과 의사와 보육 교사, 이웃에 사는 아이 엄마들과 아이에 대해 상담할 수 있죠. 아내 외에 육아 동료를 만들면 훨씬 편해져요.” 실제로 아이와 함께 외출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이 즐겁게 육아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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