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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8. 2017

01. 명화와 달콤쌉싸름한 그리스신화 명강의!

<신이 인간과 함께한 시절>



인간들은 태고의 혼돈스러운 세상에 우연히 나타나서 신화 내지는 미신에 의존하여 자신과 세상 사이에 필연적인, 그리고 풍부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원시적 세계는 인간성을 지닌 신들로 해서 보다 아름답고 생동감 있게 보인다. 그리스의 달빛은 유난히 아름다울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 속에 온갖 신과 설화가 있고 땅 위의 풀 한 포기, 이슬 한 방울까지도 어떤 요정의 풋풋한 감성을 담고 있으며 또한 달을 관장하는 신은 매우 아름답고 고상한 여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신화는 신이 인간 세상에 함께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규중의 소녀가 눈앞이 아찔해지는 짜릿한 행복을 느끼며 잘생기고 강력한 힘을 가진 신에게 보쌈당하고, 양치기 소년이 여신과 연애를 한다. 괴물은 요염하기만 할 뿐 괴상하지 않고 스핑크스는 총명하고도 사리에 밝다. 산적이며 악당인 시니스(Sinis)는 가히 최초의 탄력역학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징벌과 수난의 이야기도 음산하거나 살벌하지 않다. 그리스신화에서의 지옥은 다음 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거실이나 사무실을 떠오르게 한다.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명계(冥界)의 왕인 하데스가 신나게 연애하는 모습은 마치 종일 점잖은 척 폼 잡던 사장님이 스캔들에 연루된 것을 보는 듯하다. 그리스의 명계가 천국보다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제우스의 양육>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영국 런던, 덜위치 박물관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런 상상에 즐거워하고 있지만 천문학과 우주비행선이 이러한 경외심과 즐거운 상상을 파괴하고 있다. 강력한 과학은 ‘탈마법화’를 실현했지만 그 후부터 ‘세상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 (실러). 동화 《피터팬》에서는 사람이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면 세상에서 신 하나가 죽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리스신화에서 신은 ‘죽지 않는 몸’이라고 했으니,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떨어진 행성으로 피난을 간 것이라 믿고 싶다. 오늘날에 숲 속으로 들어가면 이제는 선녀나 구미호, 심지어 여우도 볼 수가 없고 남은 것은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들뿐이다. 기적 같은 느낌, 신기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곳은 이제 가상세계밖에 없다. 신선도 요괴도 없는 세상은 얼마나 건조하고 무료한가! 이로써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재주술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유기주의적, 생태주의적 윤리관이자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라는 상태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흠뻑 빠져 있는 판타지게임, 판타지문학 내지는 타임 슬립 드라마 등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이같이 소원하고 심오한 ‘재주술화’의 염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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