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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9. 2017

04. 도덕적 과실을 깨닫는 데서 운이 시작된다.

<운을 읽는 변호사>


변호사로 일하면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절실히 깨달은 것은 ‘다퉈서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툼은 운을 나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소송에서 이겨서 큰돈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운이 나빠지면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분쟁으로 손에 넣은 돈은 곧 잃게 됩니다. 변호사인 저는 그런 몰락을 지겹도록 봐왔습니다.

다툼은 없는 편이 좋습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을 통해 얻은 철칙입니다. 다만 예전에는 조금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법을 지키면 분쟁은 사라질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법만 지키면 무슨 짓을 해도 돼’라는 생각 자체가 분쟁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법률상의 죄’가 아니라 ‘도덕적 과실’이라는 관점에서 매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법률상의 죄는 육법전서에 기록된 규칙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이나 절도 같은 것인데, 이런 죄는 보통사람이라면 좀처럼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도덕적인 과실이란, 법은 어기지 않았으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데 따르는 죄입니다. 자기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돈을 벌려고 하거나, 사회적인 지위 혹은 명예를 얻으려고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말합니다. 

도덕적 과실은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입시나 취업 등에서 여러 군데에 지원해서 합격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합격은 단 하나일 텐데, 괜히 여러 군데에 지원해 합격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 과실을 눈치챈 것은 도덕과학을 배우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도덕과학(Moralogy)이란, 법학자인 히로이케 치쿠로(廣池千九郞) 선생님이 창안한 학문으로 도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도덕과학에서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도덕적 과실을 저지른다고 말합니다. 매일 먹는 음식도 고기나 생선, 채소의 생명을 빼앗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통근이나 통학할 때도 그렇습니다. 

매일 이용하는 철도나 도로도 이를 건설할 때 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이 있겠지요. 그런 사람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회사나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태양이나 자연이 주는 은혜를 이용해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활 전반에서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덕과학에서는 이것을 ‘도덕적 부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도덕적 부채를 그냥 내버려두면 운이 달아납니다. 그러나 도덕적 과실을 인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운이 달아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툼은 도덕적 부채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막대한 희생 덕분에 성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 내게 소소한 피해를 줬다고 해서 ‘너도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싸우려는 마음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싸우지 않는 것, 도덕적 과실을 깨닫는 것, 은혜에 감사하는 것, 도덕적 부채를 갚는 것. 이를 실행한다면 불운이 사라지고 행운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운이 차례로 닥쳐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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