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죽음부터 시작하라.

<귀촌에 투자하라>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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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죽음을 떠올려도 실감 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다. 설령 장례식장에 다녀오더라도 바쁜 일상에 파묻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 생명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자신과 연관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먼일이라 피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촌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삶과 죽음이 매우 가까워서 사실적이다. 있고 없음을 명확하게 느낀다. 겨울바람 속에 숨어든 봄바람의 기운을 느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부터 경탄과 환호성이 늘어난다. 날마다 흥분과 감동이 인다.

돌확은 깊어서 한 번 얼면 오래가고, 고양이 물그릇은 낮아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한다. 언 땅도 며칠 햇볕을 받으면 푸릇푸릇한 새잎이 돋아난다. 눈치를 보는 어린잎이 신기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계절을 착각한 개나리와 때 이른 꽃봉오리도 눈에 띄면 마음 쓰이는 게 시골이다. 죽은 듯이 보이던 꽃과 나무가 봄이면 보란 듯이 꽃을 피운다.

이와 달리 죽음도 목격한다. 시골에선 차로 10여 분만 달려도 차에 치여 죽은 짐승을 흔하게 본다. 도축하기 위해 가축을 운반하는 차도 심심찮게 마주친다. 마당에서 죽은 새와 고양이를 보는 날도 있다. 이럴 때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일상적이어서 더 그렇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회가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겨울이면 휑한 자연을 보면서 인생을 고찰한다. 모두 맨몸으로 떠나는 것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인간은 많은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가면서도 유독 인간만 무언가를 남긴다. 대부분 유산이 되지 못하는 짐이다.

시골집을 구하기 위해 9개월 동안 많은 집을 보았다. 1억 내외로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니 팔리지 않아 몇 년씩 방치한 경우가 상당하다. 몇 년씩 지난 달력도 본다. 시골집 매매는 집집이 사연과 사정이 다양하다. 집주인이 갑자기 사망해서 매매로 내놓기도 하고, 더러 요양원에 입원하거나 자녀 집으로 가서 빈집으로 남았다.

살아생전 당사자가 요긴하게 쓰던 생활용품일지라도 다른 이에겐 처치 곤란인 물건이다. 생활용품과 농사용품이 엄청난 쓰레기와 뒤엉켜 있어 무엇이 생전에 쓰던 물건인지 서로 구별이 안 된다. 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짐이 가득한 집도 여러 채다. 헛간과 창고에도 구분이 안 되는 짐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계약하면 집주인이 다 가져가고 치우는 줄 알았는데 시골은 다르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현재 상태 그대로 사는 것이란다.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쓰레기도 떠안고 산다고? 흐메! 정말 놀랐다. 세상에나 웬 짐이 이렇게 많을까. 기절할 정도다. 더러 골동품으로 보이는 물건이 눈에 띄어도 쓰레기에 먼저 숨이 막힌다.

귀촌하고 나서 이해했다. 순전히 시골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생긴다. 텃밭이라도 일구면 농기구는 당연하고, 마당에 있는 나무를 자르는 가위와 톱도 종류별로 필요하다. 빗자루와 부삽은 제일 먼저 장만해야 한다. 눈 치우는 삽도 필요하고, 항아리와 간단한 집수리에 쓸 도구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고장 난 가전제품을 쉽게 수리해서 쓰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고장 나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창고나 지하실, 마당에 임시로 쌓아둔다. 아파트처럼 쓰레기를 치우기도 쉽지 않아 불필요한 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임시가 영영이 된다. 어떤 마을은 쓰레기를 개인이 쓰레기처리장까지 가져가야 해서 불법인 줄 알면서도 웬만한 건 태운다.

수많은 짐을 보면서 웰 다잉(Well- dying)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하루에 하나씩 버려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작심삼일이고, 이래저래 늘어나는 물건을 구석구석 쌓아둔다. 버리기 아까워 방치한 물건이 지하실과 마당에 늘어난다. 집안도 마찬가지다. 뭐가 이리 많은지 한숨이 난다. 짐에 치여 사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죽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더 무겁다. 단출한 상태에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날수록 크게 한숨이 터진다. 내가 세상 뜬 뒤에 이 많은 짐을 누군가가 치워야 한다면 기가 찰 거다. 마지막을 생각하자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할지 한숨 속에서 반짝, 하고 묘책이 떠올랐다. 바로 ‘사라지는 집’ 프로젝트다.

대문을 개방한다. 그리고 방문자가 원하는 물건은 남김없이 모두 판다. 땡처리하듯 값싸게 판다. 그래서 사라지는 집이다. 마당에 있는 소나무도? 거실에 있는 소파도? 냉장고도? 음……. 고민이 된다. 뭐 냉장고 없이 사는 사람도 있는데. 팔아야겠지? 그래야 ‘사라지는 집’ 프로젝트에 어울리겠지?

우선 새것부터 파는 게 나을까.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도 상당하다. 나중에 쓰려고 사둔 것도 있고, 선물 받은 것도 꽤 있다. 하나씩 팔면 하나씩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에는 공간이 생긴다. 집 안이 간결해질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들뜬다. 사라지는 집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키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끼는 것은 남겨야 하나? 좀 더 구체적으로 궁리해야겠다. 아, 참! 60세 이상은 판매 금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하나? 선물할 거라면 허용해야 할까? 뜻밖에 세세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 생긴다. 그래도 재미있다. 사라지는 집에 초대합니다! 구호는 이걸로 정해 포스터를 만들면 어떨까.

기부 단체에 보내는 것만큼 기쁘고 신나는 일이다. 시골에 와서 짐을 줄인다고 기부 단체도 몇 번 이용했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만다. 무엇보다 ‘사라지는 집’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마지막엔 나도 사라진다.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 가서 예행연습을 한다면? 무궁한 상상이 즐겁다.

죽음이 두렵게 다가오지 않고 축제로 다가온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 생각만으로도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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