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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20. 2017

07. 사랑을 위한 트로이전쟁

<신이 인간과 함께한 시절>



에리스는 홧김에 큰 선물을 보냈는데 바로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여 있는 황금사과를 연회석에 던진 것이다. 황금사과는 에리스의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연회에는 내로라하는 미인과 미남들이 다 모여 있었는데 서로 자신이 사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싸우기 시작했고 연회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예선, 본선 등 여러 단계의 선발을 거쳐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탈락하고 단 세 명의 여신이 최종결선에 진출했다. 바로 제우스의 비 헤라,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다.

타이틀을 둘러싼 셋의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우주의 왕이자 여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제우스는 이것이 얼마나 미묘하고 중대한 사안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셋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도 나머지 두 명한테 원망을 살 것이 뻔했다. 제우스는 심사숙고할 시간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이 뜨거운 감자를 트로이에 던져주는 것이다. 어차피 트로이는 파멸될 운명이고 마침 이것을 트로이를 파멸시키는 한 단계로 활용하면 된다. 그렇게 하여 제우스는 헤르메스와 세 명의 여신을 아직 트로이의 왕자가 아닌 양치기로 살고 있는 파리스에게 보내어 그에게 심판을 맡겼다. 세 명의 여신은 이번 선발 결과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트로이에 오기 전에 먼저 스카만데르 강(또는 크산토스라고 부른다)에 가서 목욕을 했다. 이 강의 물은 머리를 물들이는 기능이 있어서 머리카락을 황금색으로 바꿔줄 수 있었다.

양치기 청년 파리스는 매일 염소만 보다가 처음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여신들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고 자기가 맡은 일에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세 명의 여신들은 황금사과를 얻기 위해 각자 파리스를 회유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양치기 청년 파리스를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나서지 않고 대신 사랑의 여신다운 눈빛으로 파리스를 공략했다. 그녀가 말했다. “파리스, 앞서 두 여신이 그대에게 준 선물에는 모두 위험이 포함되어 있지만 내가 주는 선물에는 오직 행복과 쾌락밖에 없다. 만약 황금사과를 나에게 준다면 그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의 여신은 말할 때 일부러 몸에 걸친 베일을 만지작거려 온몸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채가 쏟아져 나오게 했다. 다정한 청년 파리스는 마침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나이인 데다 우주 최고의 미인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그 매력에 넘어갈 수밖에,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었다. 아프로디테는 의기양양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헤라와 아테나는 노발대발하며 가버렸다. 이로써 파리스는 자신의 나라에 가장 확고하고 무서운 철천지원수 둘을 만들었다. 나중에 트로이전쟁에서 이들 둘은 진심을 다해 성심성의껏 트로이를 파멸의 길로 가도록 도왔는데 다른 신들은 그냥 심심풀이 장난인 데 비해 그녀들은 미인 선발대회에서 자신들을 탈락시킨 자에게 처절한 복수를 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황금사과 하나가 일으킨 참사’였다.


<파리스의 심판> 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1533), 독일, 고타예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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