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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20. 2017

04. 뭔가를 숨기는 '유도성 발언'

<악마의 대화법>



실제로 일어난 사실들에 주목하고 감정적인 언어는 의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철한 머리로 사고하기가 어려워진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논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우리의 사고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상대방이 특정 문제를 회피하려 하는지 늘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 쓸데없이 기세만 높이는 말은 대부분 무언가를 피하려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회피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제지만”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지만” “이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지만” “너무도 당연하지만” “초등학생들도 아는 문제지만”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듯이”등의 요란한 수식어로 말문을 연다. 이때 말하는 사람의 진짜 의도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당신의 사고를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답변을 유도할 때는 이런 질문을 한다. “동의하지 않으세요?” “이 말이 틀립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이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요?” 때로는 일부러 문제를 내놓고 자신이 원하는 답을 말하게 한다. “너, 나 사랑하지? 아니야?” “이 옷 300위안 주고 샀는데 진짜 싸지? 안 그러니?” “산산조각 난 이 도자기 말이에요. 정말 위대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럼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유도성 질문에 넘어간다.

다음의 질문을 살펴보자. 한 남자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 데이트할 때 자전거 탈까?” 자전거를 타자고 요구하는 이 남자가 회피한 문제는 무엇일까? 여자가 자신과 데이트를 할지 여부다. 남자는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걸로 이미 가정하고 있지만, 사실 상대방의 생각은 어떤지 알 수 없으니 그 문제부터 의논해야 한다. 데이트 수단을 정하기에 앞서 일단 데이트를 할지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 아닐까?


언니와 강가에 앉아 있던 샤오메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해졌다. 그녀는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힐끗 쳐다봤는데 삽화도 대화도 없었다. ‘저런 책이 무슨 소용이야?’ 샤오메이는 생각했다. ‘삽화도 대화도 없잖아.’

샤오메이는 자신의 생각을 질문을 통해 이미 내놓았다. 생각을 명확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정리하자면 이런 생각일 것이다. ‘삽화도 대화도 없는 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법정에서는 샤오메이 같은 질문들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질문은 정답을 정해놓거나 그런 암시를 포함하고 있기에 대답하는 사람이 질문자의 의도에 가까운 답변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변호사는 이렇게 ‘유도된’답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전형적인 예로는 이런 것이 있다. “자동차 전조등이 부서진 것을 보았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죠?” 이때 상대 변호사는 틀림없이 항의할 것이다. “유도성 질문입니다. 가정한 사실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자동차 전조등이 부서졌다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질문을 고쳐서 물을 것이다. “당신은 부서진 전조등을 보았습니까?”

또 다른 전형적 예로는 이런 것도 있다. “당신은 이제 아들을 때리지 않습니까?” 이때도 피고의 변호사는 항의할 것이다. “유도성 질문입니다. 가정한 사실은 증거가 아니며, 피고가 아들을 때렸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질문을 받은 피고가 ‘예’ 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면 어느 쪽이든 아들을 때렸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과 같다.

근거가 없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정을 내놓는 이유는 대부분 그 문제를 회피하고 원하는 답을 유도해내기 위해서다. 평소 상대방의 말이 암시하고 있거나 그 말에 명시되지 않은 가정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가정을 악용하면 선량한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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