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과 함께한 시절>
이는 세상에서 가장 기막힌 추리소설이다 ─ 사건을 파헤치던 탐정은 결국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이는 또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다 ─ 한 남자가 끔찍한 운명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끝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겪었다. 이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적 명제를 보여주는 우화로 아버지를 찾는 것은 인류가 자아를 탐구하는 기원과도 같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간단하고 우연적인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 배후의 세계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과 경외심을 반영한 것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안에는 인간의 말 못할 사정이 들어 있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찾고 혈연을 밝히는 과정은 좁은 의미에서의 ‘너 자신을 알라’의 과정이자 인류가 세계의 우화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스킬로스의 희극 《스핑크스》에서 실레노스도 스핑크스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지금 내 손에 든 물건은 산 물건일까 죽은 물건일까?” 실레노스는 손을 등 뒤에 숨기고 있었고 손에는 살아 있는 새 한 마리를 쥐고 있었는데, 살짝 힘만 주면 새를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스핑크스는 답을 맞힐 수가 없었다.
테베는 위험에서 벗어났고 테베인들은 현명한 군왕을 얻게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고 과부가 된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며 비극적 운명의 중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잔인한 운명의 여신들은 오이디푸스가 엄청난 공적을 세웠거나 말았거나 정해진 운명의 궤도를 바꿔주지 않았다. 그녀들은 영생의 신이었기 때문에 남아도는 것이 시간과 인내심이었다. 유일하게 내막을 아는 죽은 라이오스 왕의 하인은 비록 오이디푸스가 바로 과거 자신이 몰래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맡긴 그 아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그가 라이오스를 죽이는 광경은 현장에서 목격했다. 위험을 피해 그는 재빨리 테베 성에서 멀리 떨어진 키타이론 산 속으로 숨어 버렸다.
신들은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에게 20년의 행복한 시간을 허락했는데 그것이 신의 호의라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행복이 클수록 고통은 그 수백 배가 될 것이니까. 이들은 네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먼저 쌍둥이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태어났고 이어서 쌍둥이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태어났다. 이들은 오이디푸스의 자식이자 그의 동생들이다. 근친상간이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문명과 문화는 인간이 넘어서면 안 되는 ‘윤리도덕’을 형성했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시대와 윤리도덕에 비추어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모순이었고 운명이라는 이름의 고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