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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7. 2016

01. 삶과 죽음은 마주보며 존재한다.

<이별을 위한 엔딩노트>

건강하게 지낼 때는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에 완전히 무감각합니다. 분명히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텐데도, 자신이나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혹은 먼 훗날의 이야기로 치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실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닥칩니다. 허무할 정도로 느닷없는 죽음도 흔합니다.

     
제가 지금껏 일해왔던 응급실에는 교통사고나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듭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하게 생활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단 몇 초 사이에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고, 단 몇 분 후에는 들것에 실려 중환자실로 옮겨집니다. 왕성하게 삶을 영위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위독한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환자의 가족과 지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의료진에게 매달려 살려달라고 호소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때늦은 경우가 응급 현장에서는 허다하게 발생합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저는 ‘인간은 늘 죽음과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죽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내일 혹은 모레,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죽음의 위협에 맞닥뜨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불안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사람은 죽음과 마주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인생에 커다란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일단 ‘삶과 죽음은 늘 마주 보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확실히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죽는다’는 것의 의미에는 생물적인 죽음, 법률적인 죽음, 사회적인 죽음 등 세 종류가 있습니다. 생물로서의 육체가 소멸하면 법률상 사망으로 처리되어 사회와 생활환경에서 더는 활동하지 못한다고 공인됩니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인간의 죽음’입니다. 의료 현장이나 행정 관서에서 죽음은 사인을 확정해서 사망진단서나 매장 허가증 등을 발급하는 등 매우 엄숙하고 사무적 절차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는 한 사람의 인간에 대한 사망을 공인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자연사, 평온사, 만족사라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 요즘에는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약 80%, 집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약 10%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노화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사’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병을 치료하다가 병원에서 숨지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병원 신세를 거의 지지 않는 건강한 사람은 집에서 ‘자연사’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특별한 감정의 동요 없이 노화현상을 덤덤하게 받아들여 주는 가족이 있다면 자연사를 맞이할 기회가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몸이 점차 쇠약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직접 사인이라고 할 수 없는 암(고령자는 암을 지니고 살아가면서도 암이 아닌 다른 사인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을 고치겠다며 병원에 헛되이 누워서 지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요즘 들어 양상이 다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병원에 입원하면 사망할 때까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의료 처치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사전 의료 의향(Living will)이나 가족의 의향을 존중해서 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할 것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사전 의료 의향은 어떤 식으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표시입니다. ‘연명 조치를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는 의향을 들어주기 위해 완화의료(Palliative care)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는 처음부터 완화의료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흔히 경험하는 일인데, 환자나 그 가족은 완화의료를 받아들이기까지 꽤 많이 망설입니다.
     
다른 병원에 찾아가 새로이 진료를 받기도 하고, 투약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비보험 치료를 받아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다른 치료 방법을 찾아다니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완화의료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어렵사리 선택한 인생의 마지막 국면에는 환자와 가족의 의향이 명확히 반영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평온사’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평온사는 인생의 말기에 인공호흡이나 위루(胃瘻, Gastrostomy) 같은 연명 처치를 거부하고 맞이하는 죽음을 말합니다. 이에 관해 앞으로 말기 의료의 지표가 될 만한 활동을 소개하겠습니다. 
     
고령화율이 47%에 달하는 일본 고치 현의 한 시골 마을에서 30년 전부터 농촌 의료를 실천하고 있는 히키타 요시히라(疋田善平)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료소를 거점으로 삼아 온 마을에 예방의학을 시행하고, 어르신들이 죽기 직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사전 의료 의향’을 바탕으로 자택에서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목표로 삼는 죽음의 형태는 ‘만족사’입니다.
     
흔히 말하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일 뿐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반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자 l 야햐기 나오키

저자 야하기 나오키(矢作直樹)는 1981년에 가나자와 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그 후 마취과를 시작으로 구급·집중치료, 내과, 수술부에서 직접 환자를 만났다. 2001년부터 도쿄 대학 대학원 의학계연구과 구급의학분야 교수 및 의학부 부속병원 구급부·집중치료부 부장으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30여 년간 임상의로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대학의 개인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다. 젊었을 때부터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한 그는 이런 소박한 생활에 거부감이 없다. 연구실에는 가구가 거의 없고, 책만 잔뜩 쌓여 있을 뿐이다. 그는 이런 생활이 매우 쾌적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집, 자동차,옷, 가구 같은 물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기인이다. 저서로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人は死なな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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