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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27. 2017

08. 유머를 이용해 상대방의 관심 돌리기

<악마의 대화법>



변론하는 과정에서 주제와 관련 없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끌어들여 논증에 대한 관심을 돌려놓는 것을 ‘무관한 유머의 오류’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들으니 제가 예전에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그 이야기는 청중이 앞서 변론한 내용을 잊어버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유머는 토론을 더욱 생동감 있고 흥미롭게 만드는 동시에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오류의 목적은 유머 자체가 아니라 유머를 이용해 변론의 핵심에 모여 있던 청중의 관심을 흩뜨리는 것이다. 농담은 청중을 웃게 만들 수 있겠지만 변론에서 이기려면 일정한 언어적 기술이 필요하다.


영국 국회의원인 토머스 매시-매시(Thomas Massey-Massey)가 크리스마스의 명칭을 크리스타이드(Christ-tide)라고 바꾸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크리스마스는 가톨릭의 기념일이니 개신교 국가에선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때 메시의 제안에 반대하던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의원님의 이름도 ‘투-타이드 타이디-타이디(To-tide Tidey-Tidey)’로 변경하길 제안합니다.” 크리스마스 명칭을 바꾸자는 제안은 그렇게 웃음소리에 휩쓸려 잊혔다.

무관한 유머의 오류를 사용하는 전형적인 경우가 바로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자리에서 우스운 질문을 던질 때이다. 선거를 치르는 의회 회의장에 웃음소리가 퍼지면 자리가 한결 재미있어지는 동시에 합리적인 논증은 핵심에서 밀려난다. 이때 후보가 더욱 재치 있게 응수한다면 ‘무명의 질문자’로 유명인의 어록에 끼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의 정치가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 등은 모두 이렇게 절묘한 유머로 상대를 물리쳤다.

누군가 영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낸시 애스터(Nancy Astor)에게 물었다. “농업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돼지 발가락이 몇 개인지는 알아요?” 그녀는 태연히 대답했다. “지금 신발을 벗고 세어보시면 더 빨리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은 무관한 유머의 오류에 대한 전형으로 자주 인용되는 예다.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주교가 동물학자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진화론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였다. 진화론을 멸시하던 주교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원숭이의 후예라니, 그럼 그 원숭이가 당신의 할아버지 쪽입니까, 아니면 할머니 쪽입니까?” 이 같은 주교의 조롱에 헉슬리는 멋진 대답으로 받아친다. “원숭이가 인간이 됐다는 사실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다만 제 조부가 당신처럼 많이 알고 권세도 지녔지만 그렇게 경박한 말로 진지한 과학을 조롱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두는 게 낫겠습니다.”

이성적인 논증을 하려는 사람에게 포복절도는 비웃음과 마찬가지로 반박하기가 몹시 까다롭다. 대부분의 청중은 논증이 합리적인지 따지는 것보다 소리 내어 웃는 쪽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중을 상대로 변론
을 펼치려면 언제든 청중에게 던질 수 있는 딱 맞는 농담을 잔뜩 준비해야 한다. 웃음소리는 최소한 당신의 논쟁 상대의 권위를 조금씩 녹여버릴 수 있고, 당신이 다음 수를 생각할 시간도 벌어줄 수 있다.

무관한 유머를 적절히 사용하려면 똑똑한 머리와 일정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토론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면 빠르게 사고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일전에 들었던 토론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갑이라는 사람
이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전투기를 독재국가에 팔아도 된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펼쳐가고 있었다. 그때 상대방이 손수레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하자, 당황한 갑은 순식간에 쩔쩔매게 되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어느 대학생이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품행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되었다. 공개적으로 비판받는 자리에서 그는 진지한 말투로 청중에게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비판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성함도 공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늘 저를 두고 최고의 말썽꾸러기라고 하셨거든요.”

당신도 실소를 흘렸는가? 그렇다면 결과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를 비판하던 측의 논증은 웃음소리에 묻혀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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