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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7. 2016

01.가슴 뛰는 교육을 하라.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

‘가슴 뛰는 교육이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교육이 그냥 교육이지 가슴 뛰는 교육이 따로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살아오면서 가슴 뛰는 교육을 접하지 못했다. ‘교육’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져 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교육’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나는 교육을 주제로 강연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그러면 처음에는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나를 향했던 눈망울들이 허공이나 바닥으로 마구마구 움직인다. 이런 상황을 포착하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이야기해보세요.”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온다.
     
“주입식이요.”
“입시 위주요.”
“과도한 경쟁이요.”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들이다. 이런 반응을 접하면 자연스레 한 명의 선생님과 그 선생님과 마주하며 앉아있는 20~30명 되는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목이 터지라 열심히 떠들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 모습과 상관없이 시간을 보낸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 공책에 낙서하는 아이,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보는 아이 등등. 물론 선생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필기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 얼굴에는 지루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가 넘친다. 교실을 박차고 뛰어나가 운동장이나 매점으로 달려가고, 밀린 수다를 떨기 위해 친구를 찾아가는 등 수업에서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와 상관없이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이런 모습은 그나마 쉬는 시간에 자율성을 주는 선생님 반의 이야기이고, 어떤 담임선생님은 쉬는 시간조차 아이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일도 있다.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면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조차 한 사람씩 다녀오라며 통제하는 선생님도 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를 만날 수 없을 정도로 학원은 모든 아이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학원에서도 따분한 교육이 이어진다. 선생님은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받아 적고 외우고, 그날 외워야 할 것을 외우지 못하면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갈 수 없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집에 왔다 하더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숙제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숙제를 다 하고 나면 12시, 새벽 1시. 그제야 아이들의 하루가 막을 내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피로에 절어 있다. ‘동태눈깔’이라고 표현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의 눈빛엔 생기가 없고, 수업시간엔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많다.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내가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이랬다.
     
이런 우리나라 교육의 모습은 초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성인이 된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교육의 이미지는 주입식, 강압적, 따분함, 지루함 등 부정적인 이미지뿐이다. ‘학교’와 ‘교육’을 떠올리면 우울해지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이러니 ‘가슴 뛰는 교육’이라는 말이 황당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학부모가 강남식 사교육에 열광한다. 서울 강남에 있지 않아도 강남식 사교육을 표방하는 학원들이 전국에 널려 있고, 방학 때면 지방에서 강남 대치동으로 학원 원정을 오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다. 우리는 왜 강남식 사교육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강남식 사교육이 우리 아이를 성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강남식 사교육을 잘 받으면 이른바 ‘SKY’ 대학에 가고, ‘SKY’ 대학에 가면 좋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을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의사, 판사, 대기업 사원 등은 전체 취직자의 5%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우리가 가진 교육의 개념은 그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직업은 남고 사람은 사라지고, 교육은 없고 성적만 남는 현상이 벌어진다. 물론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이 직업을 좋아하는가?’ ‘이 직업을 통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가?’가 없다. 돈을 많이, 그것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 되는 것이다. 성적을 높이는 것이 교육의 최대 목적이 되다 보니, 점수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우게 되고 친구와 끊임없이 경쟁하게 한다. 억지로 떠밀려서 공부하니 아이들의 자존감과 행복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불행해지는 저주의 수레바퀴에 갇힌 셈이다. 우리 아이들을 이 저주의 수레바퀴에서 빼낼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수록 행복해지게 할 수는 없을까?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슴이 설레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재미있는 교육을 할 수 없을까? 이 질문은 내가 교사 생활을 하는 7년 동안 계속되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Yes!”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도 좋은 교육이 있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 이미지의 교육과는 다른 교육을 실현하는 나라들이 있고, 우리 교육을 변화시킬 동력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슴 뛰는 교육은 어떤 것일까? 먼저,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슴이 뛰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보통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을 때 가슴이 뛴다. 내일 떠나는 소풍이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을 때, 저 남자 혹은 저 여자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을 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가슴이 뛰고 어떤 일이든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게 된다. 
     
또한 정직・신뢰・배려・나눔・사랑 같은 가치의 중요성을 가슴 깊이 느끼고 실천할 때도 가슴이 뛴다. 아니 가슴이 뛰는 정도가 아니라 불타오름을 느끼게 된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 시절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대부분 부모님이 공부에 방해된다며 <원피스> 같은 만화에 빠진 아이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만화들은 아이들에게 위대한 가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원피스>의 핵심 주제는 ‘친구는 소중하다’이다. 소중한 친구와 함께 모험을 떠나며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돈보다 소중한 것은 우정이다.’ ‘평생 가슴 뛰는 삶을 살자.’와 같은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만화가 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감동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보다 친구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친구 때문에 울고불고하는 때도 흔하다. 나는 교사 시절 친구 때문에 죽고 못 사는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 
     
“네가 학교에서 멋지게 살아야 네 친구도 그렇게 되지 않겠니? 친구를 위해서 공부하고, 친구를 위해 멋지게 살아라.”
   
이렇게 이야기해주니 아이들이 달라졌다. 엄마・아빠를 위해 공부하라 하면 하기 싫지만, 친구를 위해 하라고 하니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이런 설렘을 경험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휴지도 줍고 약한 아이들도 도와주고 우정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도 잡힌다.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원피스> 같은 만화들이 단순히 재미만 추구한 만화가 아님을 느꼈고, 아이들 역시 가치에 열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텍쥐페리가 이야기하였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배를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다에 대한 꿈을 심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치기 이전에 인간적인 가치를 알려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얼마나 버는가 하는 생존적인 문제보다는 나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보편적인 진리에 열광한다. 
     
영화 <명량>을 보았는가. 1,000만 관객을 넘긴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 감동한 것일까? 기가 막히게 훌륭한 이순신 장군의 전술일까, 아니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충정일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목숨을 바쳐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가치관에 감동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가슴 뛰는 가치를 심어 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가슴이 설레고,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행복한 그런 교육 말이다.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공부하는 게 너무 신나. 나 훌륭한 사람이 돼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상상만으로 설레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이렇게 가슴 뛰는 교육을 해야 한다. 
     
나는 이런 교육이 인문학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인문학적인 가치이다.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워준 소크라테스, 이데아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한 플라톤, 인간다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자, 백성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보여준 세종대왕 등 이런 위대한 인물들의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엄마 때문에 억지로 책상에 앉는 아이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책상에 앉는 아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둘 중 누가 리더가 되겠는가. 인문학 교육은 아이들 가슴에 불을 지르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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