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우리 사회에 드리운 불안의 행로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따뜻한 봄이 온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그들에게 지금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기우 씨는 난감한 표정으로 참 어려운 질문이라며 입을 열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선하고 정의롭게 살면서도 돈은 좀 벌면서 살았으면 좋겠네요.”
‘정의로움’을 말하면서 돈 이야기를 꺼낸 것이 쑥스러워서인지 기우 씨는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기우 씨의 아버지 이민의 씨는 가족이 모두 모여 사는 것을 꼽았다.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서울이든 광주든 가족이 모두 모여 살았으면 좋겠어요. 서울이면 더 좋겠지만…….”
서울에 모여 살고 싶다는 것이 너무 큰 꿈이라도 된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이민의 씨. 혹시라도 이 말이 아들의 서울 취업을 압박하고 부모 부양 의무를 환기하는 말이 될까 봐 조심하는 것 같았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학비와 생활비 부담을 안겨줬던 것이 여전히 미안하다.
오늘 하루도 접수받은 콜 수를 헤아리던 김기수 씨는 “자식에게 보호막이 되는 그런 아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뭐, 그 이상 제가 바라는 건 없어요”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대해 발언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바로 자식 세대를 위한 것이다. 어찌 보면 소박하고 평범한 바람들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이 실직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바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실업 수당을 받게 된 최인송 씨는 과연 8개월 후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 분식 회계를 주도하며 은행·정부 관계자들과 흥청망청 회사를 운영했던 회사 관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협력 업체 직원으로 그저 열심히 배만 만들었던 자신과 동료들이 겪은 수차례의 해고와 재고용은 온전히 그들만의 책임일까. 인송 씨는 여전히 궁금하다.
1997년에 있었던 IMF 사태는 한국 사회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그 후 20년간 사회는 더 깊은 불안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학력이 더 높지 않아서, 능력이 더 출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모두들 제 탓을 했다. 자신의 무능을 탓하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 모든 일은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개인과 그 가족으로만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힘겨웠던 중년의 아버지를 지켜보며, 가장이 된 창의 씨는 “한 번쯤은 좌절을 겪는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 하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사회가 맡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대로 된 사회라면 말이에요” 하고 되묻는다.
불안이 우리 모두를 잠식하기 전에, 개인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버팀목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