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Oct 31. 2017

02. 정신차려 이 친구야!

<습의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혈액형을 묻는 것일까? 사실 우리가 무심코 상대방의 혈액형을 묻는 속내에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범주화(categorization)하는 습성이 자리하고 있다. 범주화란 무엇인가? 사물을 구분 짓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OO을 해 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대개 이런 말을 쓸 경우는 세상에는 그것을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 정도로 그 경험이나 ‘그것’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강조할 경우에 쓴다. 가령 ‘세상에는 이집 냉면 맛을 본 사람과 못 본 사람으로 구별된다’ 뭐 이런 식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을 구분 짓기 좋아한다. 그렇다면 구분은 왜 지을까? 그것은 일종의 생존본능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은 범주화에 익숙해 있다. <몸의 철학>의 저자인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인지언어학 교수 조지 레이코프(G Lakoff)와 오리건대학교 철학교수 마크 존슨(M.Johns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든 생물은 범주화해야 한다. 심지어 아메바도 자기와 마주치는 것들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또는 ‘다가가야 할 대상’과 ‘멀리 떨어져야 할 대상’으로 범주화한. 동물들은 음식, 약탈자, 가능한 짝, 자신들에 소속된 동물 등을 범주화한다. 우리는 범주화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의 시대 김용규’에서)

갓 태어난 인간은 엄마의 젖꼭지와 아닌 것을 구분하면서 범주화를 익혀나간다. 그러면서 점차 시각, 후각, 청각 등을 통해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분하면서 자란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아빠와 엄마, 가족과 친족을 남과 구분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구분 짓는 것으로 세상을 배워나간다. 우리가 무심코 재미 삼아 물어보는 상대방의 혈액형도 알고 보면 이렇게 나와 남을 구분 짓고 범주화하는 행동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구분 짓기, 범주화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배워나간다. 

먹을거리를 구분 짓고(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을 구분 짓고(가족과 남, 나와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아가 꽃과 나무, 동물과 사물에 이르기까지 구분 지으면서 세상을 알아나간다. 이러한 범주화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메바와 같은 하등 동물에서부터 모든 생명이 있는 유기체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것이 곧 진화의 원리이기도 하다. 

범주화에서 이름(단어)이 나온 것이고 그 이름(단어)을 익히는 것이 학습의 시작이다. 어쩌면 법률이든, 의학이든, 공학이든, 예술이든, 종교든 우리가 평생을 거쳐 공부하는 모든 학문도 사실 각종 ‘범주화’된 내용을 익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을 구분 짓는 것에서 언어가 나왔고 그 언어가 정신을 만든다. 이처럼 정신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범주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정신’은 구분 짓는 것의 산물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하며 조언을 하거나 (또는 그런 조언을 들을 경우) 그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제대로 구분 좀 해이 친구야’ 

구분 짓는 것은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이다. 하등동물의 범주화는 매우 단순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다가가야 할 것과 멀리 떨어져야 할 것 등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점차 고등동물로 올라갈수록 범주화 범위도 고도화된다. 가령 파리는 벽과 문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막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는 벽과 문을 구분한다. 인간은 벽 하나만 가지고도 무슨 벽인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무슨 색깔인지, 무슨 디자인인지 등 끊임없이 범주화해나간다. 범주화의 고도화인 것이다.

아이들은 대강 태어나서 1세가 지나면 본능적으로 범주화를 할 줄 안다. 가령 아이들은 고양이를 몇 마리만 봐도 금세 다른 고양이들도 ‘고양이’라는 부류로 범주화할 줄 안다. 몇 가지 꽃만 봐도 다른 모양의 꽃을 보고 금세 꽃이라는 범주화를 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할 줄 아는 이런 범주화 능력은 사실 슈퍼컴퓨터도 하기 힘든 능력이다. 컴퓨터가 고양이를 인식해서 범주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양이 사진이 입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직관적으로 범주화를 해나갈 줄 안다. 이렇게 인간은 고도의 범주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세 정도의 어린이도 할 줄 아는 우리 뇌의 이런 범주화 능력은 매우 고도화된 것으로 수퍼컴퓨터도 따라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을 볼 때 우리 뇌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왜 범주화를 할까? 삶이 곧 경쟁이기 때문이다. 생존이란 아니, 생명이란 그 자체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수십억 마리의 정자들이 하나의 난자를 차지하여 살아남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리한 존재들이다. 이미 수십억대 1의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그 경쟁에서 모두가 성공하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다. 생명이란 이토록 죽는 순간까지 목숨을 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명 존재의 현상, 그것이 바로 ‘구분 짓기’인 것이다. 잘 구분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정신 차리지 않으면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2. 시간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