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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31. 2017

03.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다.

<습의 시대>



시간이 흐르면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사람과 침팬지는 이미 600만 년 전에 분화하여 서로 다른 종이 되었다. 따라서 이미 분화된 침팬지나 원숭이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이 되지 않는다. 진화론의 본질은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이라는 과정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다양한 종의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명의 나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지구에서 살고 있거나 멸종된 모든 생물 종의 진화 계통을 나타낸 나무처럼 생긴 도표이다. 그는 이 생명의 나무를 통해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들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1837년 다윈이 처음으로 노트에 기록한 생명 나무 아이디어 <출처: https://research.franklin.uga.edu/jleebensmack/home>


2016년 4월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DNA 분석을 통해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새롭게 정리한 ‘생명의 나무’를 공개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가장 원초적인 생명체 박테리아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계통도에 따르면 박테리아에서 시작된 생물 종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식물과 동물로 진화했고 결국 고등생물로 진화했다. 생명의 나무의 마지막에는 우리 인간이 위치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동원된 생물 종은 3,000여 개에 이르고 그동안 알려진 2072개종과 새로 발견한 1011개종에서 DNA를 채취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분석한 후 다윈의 ‘생명의 나무’를 잇는 최신 계통도를 완성했다.


미생물학자들이 주도해 작성한 생명의 나무 진화 계통도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nmicrobiol201648>


사실 진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특별한 의미도 방향도 없다. 그저 환경에 적합한 종이 다음 세대에 보다 많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회를 갖는 것뿐이다. 이 때문에 진화론은 늘 논쟁의 중심이 되었고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오해는 ‘약육강식’의 논리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제국주의 사상의 중심이 되었고 여기에서 우생학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나치의 인종차별주의로 오용되어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진화론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때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빗대어 서로에게 응원하고 격려하는 말로도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특히 영세 자영자나 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기업의 횡포나 가진 자의 갑질 등 강한 자들에게 억눌려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살아남아서 버티자는 각오로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다.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지금 살아남은 모든 것이 실상은 강한 것이다.


오히려 약자라고 할지라도 환경에 적합한 종이라면 더 높은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갖는다. 적어도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은 ‘강해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살아남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한때 지구를 호령했던 공룡을 비롯해 수많았던 거대하고 강한 동물들이 모두 멸종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진화론이 우리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박사는 사람의 마음이란 그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양한 욕망과 본성을 모아둔 <오래된 연장통>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본능적으로 달달한 음식과 지방이 풍부한 고기를 맛있다고 느낀다.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습관적으로 찾게 된다. 이는 아주 오래전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면서 칼로리가 높은 과일과 기름진 고기야말로 생존에 필수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요즘에도 과거의 오래된 본능이 여전히 우리 몸에 작동하는 것이다. 불쾌한 냄새가 나거나 부패한 물건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구토감을 느끼는데 이것은 위험한 병원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위험 요소를 본능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 본능은 사물뿐 아니라 대인 관계나 연예인 스캔들, 권력형 부패 비리 등 정신적으로 혐오를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게 된다. 우리는 물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평화로운 초원을 바라보면서 평안함을 느낀다. <조망과 피신>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물이 있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적당하게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을 선호했다. 우리가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창가 쪽 구석 자리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 남성은 여성에 비해 왜 늘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을 할까? 초기 인류 남성들은 경쟁에서 이겨서 높은 사회적 서열을 차지하면 여러 명의 여성을 동시에 차지할 기회를 얻었지만 별 볼 일 없는 남성의 경우 아예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심리를 갖게 되었고 위험을 기꺼이 택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남자들이 별것 없는 내기에도 그토록 목숨을 거는 것도 이런 본능 때문이다. 남성들의 경쟁 심리 밑바닥에는 오랜 생존과 번식의 욕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한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전혀 다른 남녀의 사고방식과 심리를 풀어쓴 내용이다. 여성들은 남성을 선택함에 있어서 본인과 아이를 책임지고 지켜줄 수 있는 점을 중요시했고, 남성의 능력과 신뢰를 기반으로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남녀가 서로 다른 심리 구조를 갖게 된 이유도 역시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본능이라고 표현하는 다양한 마음들은 사실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심리적인 기제이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표현하는 단어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 마음하면 심장이 떠오른다. 그래서 마음을 하트(Heart)로 표현하고 마음하면 심장이나 가슴을 생각하게 한다. 마음 깊이 느낀다고 할 때, 대부분 손을 가슴에 살포시 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결국 정신이며 그 정신은 사실 뇌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뇌가 곧 마음이다. 우리의 뇌에는 다시 말해 마음에는 진화를 통해 다듬어진 생체 알고리즘이 있는 것이다. 못된 습관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마음과 감정은 이미 그것을 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그것을 원하고 있다. 다짐에 다짐을 해도 잠시 정신줄을 놓은 사이 이미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도 뇌의 역할이다. 진화론은 나도 이해하기 힘든 내 마음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싫은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 때문이다. 신이 태초부터 ‘완전체 인간’으로 창조했다는 믿음으로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성경의 창세기는 유대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반영된 상징적 신화라고 봐야 한다. 이를 억지로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다 보니 소모적인 논쟁이나 때론 죽음도 불사하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신화는 신화로 받아들이고 과학은 과학으로 검증하는 것이 옳은 접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진화론과 창조론은 여전히 과학과 종교간의 첨예한 논쟁점에 놓여있다. 하지만 믿음에 관한 한, 무엇을 바탕으로 어떤 것을 믿을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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