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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31. 2017

01. 공장

<꼬마 철학자>



나는 18XX년 5월 13일 남프랑스의 모든 도시들이 그렇듯 해가 자주 나고 먼지도 많으며 카르멜 수녀원과 로마시대 유적도 세 곳이 자리 잡고 있는 랑그독 지방의 한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비단 장사를 하던 우리 아버지 에세트 씨는 이 도시의 성문 근처에 큰 공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 공장의 벽면 일부를 허문 다음 플라타너스가 온통 그늘을 드리우고 공장과의 사이에 넓은 정원도 있어서 살기 편한 살림집을 지었다. 내가 태어났고, 내 삶에서 유일하게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여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원과 공장, 플라타너스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며, 아버지가 파산하여 이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만 했을 때 나는 꼭 사람들이랑 이별하는 것만큼이나 가슴 저리며 아쉬워했던 것이다.

먼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안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 요리사였던 노처녀 안누 누나는 이따금 내가 태어날 때 있었던 일을 넋두리처럼 늘어놓곤 했다. 마침 여행 중이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다는 소식과, 마르세유의 고객이 4만 프랑이 넘는 큰돈을 가지고 오다 도중에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동시에 들었다고 한다. 기쁨과 절망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이다. 마르세유의 고객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울어야 할지, 아들 다니엘이 탈 없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웃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심정으로 아버지는 한참 망설였다. 결국 아버지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울어야만 했다.

그렇다, 나는 내 부모님들에게 불운을 안겨준 아이였다. 끔찍한 불행이 내가 태어난 날부터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마르세유의 고객이 자취를 감춘 사건에 이어 한 해에 두 번씩이나 불이 났는가 하면 방적기에 날을 거는 여공들이 파업을 했고, 바티스트 외삼촌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뿐만 아니라 염료상들과 큰돈을 들여 재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XX년 혁명은 우리 집안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때부터 공장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작업장 시설이 꼭 썰물이 빠져나가듯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갔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방적기가 한 대씩 철거되었고, 날염(捺染)판이 한 달에 한 개씩 줄어들곤 했다. 마치 병든 육체에서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듯 우리 집에서 생기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3층에 있는 방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으며, 다음에는 안뜰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런 일이 두 해 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공장은 서서히 최후를 맞았다. 결국 어느 날, 직공들이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고, 공장의 종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으며,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던 우물의 도르래도 멈췄다. 그 안에 옷감을 넣고 빨래하던 커다란 못의 물도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고여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안누 누나, 자크 형과 나, 그리고 안쪽에는 공장을 지키는 수위콜롱브씨와 그의 아들인 꼬마루제만이 남게 되었다.

다 끝났다. 우리 집안은 파산한 것이다.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되던 해였다. 유난히 허약 체질이어서 잦은 병치레를 하던 나를 부모님은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읽기와 쓰기, 그리고 스페인어 몇 마디와 기타곡 두세 개만 가르쳐주었으며, 그 덕분에 나는 가족들에게 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탓에 우리 집에서 벗어날 기회를 전혀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집안의 최후를 낱낱이 목격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집안의 불행을 지켜보면서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이젠 온 공장 안을 내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은근히 우리 집이 망한 사실을 기뻐했을 정도였다. 직공들이 일을 할 때는 오직 일요일에만 공장에 들어가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루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 이 공장은 내 거야. 맘대로 뛰어놀라고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주신 거라니까.”

그러면 꼬마 루제는 내 말을 그대로 믿었다. 얼간이 같은 그 애는 내 말이라면 뭐든지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 집의 파산을 나처럼 즐거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갑자기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했다. 원래 아버지는 다혈질에 화 잘 내고 허풍이 심한 성격으로 툭하면 우레 같은 목소리로 소리 지르고 깨부수기 일쑤였다. 하지만 걸핏하면 손이 올라가고, 툭하면 언성을 높이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바로 그 성질만 빼놓으면 아버지는 평상시에는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었다.

삽시간에 몰아쳐 온 불행의 회오리 속에서 그는 기가 꺾이기는커녕 성격이 오히려 더 과격해졌다. 모두 잠든 밤에도 그는 도대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누구 탓인지도 모른 채 불같이 화를 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태양, 미스트랄, 자크 형, 안누 누나, 혁명……. 그렇다! 특히 그 혁명……!

우리 아버지 말만 들어보면 누구든지 그 18XX년의 혁명이 유독 우리 집안에만 들이닥쳐 우리를 불행의 골짜기에 빠뜨렸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가들이 우리 집안에서 좋은 평판을 얻으려야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우리가 이 혁명가들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연로하신 우리 아버지 에세트 씨(신이여, 그분을 지켜주소서!)께선 신경통이 도질 때면 기다란 의자 위에 힘들게 몸을 눕히시며 이렇게 투덜거리곤 한다.
“아, 그 빌어먹을 혁명가 놈들!”

아버지는 그 당시만 해도 신경통을 앓지 않으셨는데, 공장이 망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아야 하는 고통 때문에 감히 누구도 가까이 갈 엄두를 못 내는 무서운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는 보름 사이에 두 번씩이나 피를 뽑아야만 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서도 소곤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빵을 건네달라고 말했으며, 아버지 앞에서는 감히 눈물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쩌다 아버지가 잠시라도 안 보이게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은 흑흑 흐느껴 울곤 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안누 누나, 자크 형, 그리고 신부(神父)로서 우리를 만나러 온 큰형과 나, 이렇게 모든 사람이 울음바다를 이루곤 했다. 어머니가 불쌍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거야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면 큰형과 안누 누나는 서럽게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울었다. 그리고 우리 집안에 밀어닥친 불행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자크 형(그는 나보다 겨우 두 살 위였다)으로 말하자면 그냥 울고 싶어서, 그냥 재미로 울어댔다.

자크 형은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그야말로 타고난 울보였던 것이다. 지금도 자크 형을 생각하면 퉁퉁 부어오른 충혈된 눈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던 뺨이 눈앞에 떠오른다. 형은 밤이건 낮이건, 아침이건 저녁이건, 교실에서건 집에서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었다. 누가“도대체 무슨 일이니?”하고 물으면 그는 엉엉 소리 내 울면서“아무 일도 아녜요”라고 대꾸하곤 했다. 신기한 건, 정말 그가 아무 일도 아닌데 울어댄다는 사실이었다. 꼭 코를 풀듯 울어대는데 정작 이유는 없었다. 이따금 아버지는 짜증을 내면서 어머니한테 말했다.
“저 아인 정말 우습군. 저 앨 좀 봐요……. 눈물이 꼭 강물처럼 철철 흘러내리잖아.”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전들 어떡하겠어요? 커가면서 나아지겠지요. 저도 저 아이 나이 땐 그랬다니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자크 형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버릇은 여전했다. 오히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기묘한 습관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졌다. 그래서 부모님은 한층 더 골치를 썩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예“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라고 묻는 사람조차 없어져서 형은 하루 종일 마음 놓고 목놓아 울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자크 형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집이 파산한 이후로 재미있는 일들이 오히려 더 많이 벌어졌다.

나로 말하자면, 무척이나 기뻤다. 일일이 간섭하며 귀찮게 구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온종일 루제와 함께 마치 교회에서처럼 걸어 다니면 울리는 텅 빈 공장과, 벌써 잡초가 듬성듬성 돋아나기 시작하는 허허로운 넓은 뜰을 온통 휘젓고 다니며 놀았다. 수위인콜롱브 씨의 아들 루제는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뚱보인데, 황소처럼 힘이 세고 개처럼 헌신적이고 거위만큼이나 멍청했으며, 특히 붉은 머리칼 때문에 금방 눈에 띄었다.‘ 불그스름한’이란 뜻의 루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도 다이 붉은 머리칼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내게 있어 루제는 루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로빈슨 크루소의 하인이었던 방드르디가 되기도 하고, 원시인이나 반란군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나 역시 더 이상 다니엘에세트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짐승 가죽을 걸친 그 기이한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정말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밥을 먹고 난 다음 곧바로『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읽으며 암기하곤 했다. 그리고 동이 터오면 열심히 로빈슨 크루소 역할을 하면서 내 주변에 널린 모든 것들을 내가 공연하는 극(劇) 속으로 끌어들였다. 공장은 더 이상 공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무인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못은 대서양역할을 했다. 그리고 정원은 원시림이 되었다. 플라타너스 속의 매미떼들도 내 연극에서 역할을 해냈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루제 역시 매미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자기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 로빈슨이 누구냐고 물었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허둥댔을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는 확신을 갖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으며, 특히 원시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데는 그를 따를 만한 아이가 없었다. 어디서 배운 것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까치집처럼 헝클어진 빨간 머리칼을 흔들어대면서 목구멍에서 토해내는 그 우렁찬 포효(咆哮)를 들으면 제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로빈슨역을 맡은 나까지도 가슴이 떨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으니까.
“너무 크게 소리치지 마, 루제. 무섭단 말이야."

유감스러운 것은, 물론 루제가 원시인의 고함소리를 잘 흉내 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부랑아들이나 쓰는 상소리를 배워 와서 써먹는가 하면,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욕지거리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함께 놀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욕을 배우게 되었고, 어느 날 온 식구가 모여 식사하고 있을 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그러자 식구들은 모두들 아연실색한 표정들을 지었다.
“너 그런 욕 어디서 배웠니, 응? 어디서 들었냔 말이야?"

그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당장 소년원에 처넣어야 한다며 노발대발했고, 신부인 큰형은 내가 어쨌든 철이 들 아이이니 우선 고해를 시켜야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고해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건 정말 악몽이었다! 나는 내 양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7년 전부터 거기 굴러다니던 옛 원죄들을 긁어모아야만 했다. 그러느라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그동안 저지른 죄가 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았던 것이다. 작은 죄로 맨 위를 슬그머니 덮어놓았지만 소용없었다. 또 다른 원죄가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자그마한 떡갈나무 옷장처럼 생긴 고해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이 모든 걸 레콜레 주임신부에게 다 보여줘야만 했을 때는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에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고해와 더불어 모든 게 끝났다. 루제와는 더 이상 놀고 싶지 않았다. 악마가 마치 사자처럼 우리 주위를 영원히 어슬렁댄다는 레콜레 주임신부의 말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지금 생각해보니, 이 말은 원래 사도 바울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주임신부는 그분의 말씀을 옮긴 것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하여 갖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것도, 아울러 사탄이 루제로 변신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말을 내게 가르쳐주었다는 것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방드르디를 찾아가서 앞으로 절대 집 밖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불쌍한 방드르디!

그는 나의 단호한 명령에 가슴이 메었으련만, 아무 불평 없이 그 명령에 따랐다. 이따금 공장 옆에 있는 수위실 문간에 기대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띄곤 했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붉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러서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그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나는 점점 더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가 고해실에서 신부님에게 들은 그 사자를 닮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외쳤다.
“저리 가버려. 난 네가 무섭단 말이야!"

루제는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계속 고집스럽게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가 집에서 내지르는 괴성에 질린 그의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려거든 도제 노릇이라도 하면서 맘대로 지르라면서 그를 어디론가 보내버렸고, 그 후로는 더 이상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로빈슨 크루소 놀이에 대한 내 열정이 식은 건 아니었다. 바로 그 즈음, 바티스트 외삼촌이 갑자기 자신이 기르던 앵무새에 싫증이 났다면서 내게 주었다. 그리고 이 앵무새는 방드르디를 대신하였다. 나는 앵무새를 예쁜 새장에 넣어 내가 겨울에 거처하는 오두막 한 귀퉁이에 매달아 두고 온종일 그 흥미로운 조류와 머리를 맞댄 채 그 녀석 입에서“로빈슨, 내 불쌍한 로빈슨!”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끝도 없이 수다를 떠는 게 지겨웠던 나머지 바티스트 외삼촌이 내게 넘겨준 이 앵무새는 그 뒤로는 한사코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불쌍한 로빈슨’이란 말은커녕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앵무새에게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들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앵무새를 사랑했고 온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었다.

나와 앵무새가 이렇게 눈물이 날 만큼 지독한 고독 속에서 살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참으로 묘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완전무장을 하고 일찌감치 오두막을 나온 내가 나의 무인도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멀리서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요란한 손짓과 함께 큰 소리로 떠들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나는 간신히 협죽도나무 뒤로 뛰어 들어가서 엎드릴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쳐 갔다……. 수위인 콜롱브 씨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나마 좀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그들이 멀어지자 나는 협죽도나무 뒤에서 나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에 멀찌감치 그들을 따라갔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 낯선 사람들은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내 섬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들은 내 동굴 속에 들어가 보는가 하면 지팡이로 내 대양(大洋)의 깊이를 재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들이 그러다가 결국 내 거처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뿐이었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30분쯤 지났을까, 그들은 그 무인도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는 상상은 아예 하지도 못했는지 그냥 떠나가 버렸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재빠르게 오두막으로 달려간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뭘 하러 왔는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날 하루를 다 보냈다.

온종일 품고 있던 의문은 그날 저녁 모두 풀렸다.

저녁식사 때였다. 아버지는 공장이 팔렸기 때문에 한 달 뒤에 모두 가리옹으로 가서 거기서 살게 될 거라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공장이 팔리다니! 아, 그럼, 내섬과 내 동굴, 내 거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세상에! 섬과 동굴, 오두막을 아버지가 모두 팔아버렸다니!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만 한다니! 나는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집안 식구들이 한 달여에 걸쳐 거울이며 식기 등의 이삿짐을 꾸리는 동안 나는 슬픔에 잠겨 공장 구석구석을 홀로 거닐었다. 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이리저리 걷다가 주변에 보이는 물체를 바라보면서 꼭 사람에게 하듯이 말을 걸었다. 플라타너스나무에게는 “잘 있어, 사랑하는 친구야!”라고 말했고, 못을 향해서는“마지막이구나. 이제 우리는 영영 못 만나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뜰 한구석에는 키 큰 석류나무 한 그루가 따뜻한 햇살을 받아 아름다운 빨간 꽃을 활짝 피우고 서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읊조렸다.“ 석류나무야, 네 꽃송이를 하나만 주겠니?”그러자 석류나무는 내게 꽃 한 송이를 주었다. 나는 석류나무에 얽힌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그 꽃을 가슴에 달았다. 난 정말 불행했다.

그러나 그토록 심한 고통 속에서도 두 가지만 생각하면 내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하나는 리옹으로 이사 갈 때 배를 타게 된다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이 앵무새를 데리고 가도 좋다고 허락해주셨다는 것이다. 로빈슨 역시 나와 거의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의 섬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하니 절로 용기가 솟는 것 같았다.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는 일주일 전에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들을 챙겨서 먼저 리옹에 가 계셨다. 그래서 그날 나는 자크 형, 어머니, 안누 누나와 함께 출발하였다. 신부인 큰형은 우리와 함께 가지는 않았지만 보케르합승마차역(驛)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고, 콜롱브 씨도 우리를 배웅했다. 콜롱브 씨는 트렁크가 실린 커다란 손수레를 밀면서 우리를 앞장서 갔다. 조금 뒤에서는 큰형이 어머니를 부축하며 걸었다.

이제 다시는 큰형을 못 보게 될지도 몰랐다!

커다란 푸른색 우산을 든 안누 누나가 그 뒤를 쫓아왔고, 자크 형은 리옹에 가는 게 내심 좋으면서도 계속 흑흑거리며 어머니와 나란히 걸었다……. 나는 앵무새 새장을 든 채 그렇게 좋아했던 공장 쪽을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번씩 돌아보면서 이 초라한 행렬의 맨 뒤에 섰다.



행렬이 공장에서 점점 멀어지자 석류나무는 한 번이라도 더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는지 뜰을 두르고 있는 담장 위로 발돋움을 하는듯싶었다. 플라타너스는 가지를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던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댄 채 그들 모두에게 남 몰래 입맞춤을 보냈다.

18XX 년 9월 30일, 나는 내 정든 섬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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