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라면, 고립감 속에서 폭주하는 노인들은 우리의 현재다. 전주에서 하교하는 여고생을 성추행한 사람은 70대 노인이었다. 숭례문을 전소시킨 사람은 재개발 보상에 불만을 가진 70대 노인이었으며, 부산에서 길 가던 여대생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차별 폭행했던 사람과 제2의 대구 지하철 사고로 번질 수도 있었을 도곡역 방화사건을 일으킨 사람 역시 노인이었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인 범죄율이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노인 범죄가 빈곤에 따른 생계형 범죄였다면 최근의 노인 범죄는 점점 더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전체 범죄 가운데 노인 범죄율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 10년간 2.5배 이상 늘어났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보다 노령화가 한발 앞서 이루어진 일본에서도 이런 현상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는 후지와라 토모미는 이런 노인들을 ‘폭주 노인’이라 명명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헤쳐 <폭주 노인>을 펴냈다. 시간, 공간, 마음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노인들의 현실을 살핀 이 책은 빠른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생겨난 고립감을 ‘폭주 노인’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시간 감각은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들 세대에서 며칠씩 걸리던 편지는 이메일로 몇 초면 끝나고, 소통은 전화보다 빠른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진다. 약속과 방문은 예약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이제 촘촘하게 맞춰져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간에 끼어드는 일은 상대방에게 짜증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현대적 시간관념을 노인 세대는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현대적 규칙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들이 무례하고 고집스러워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 된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주거지에는 따로 자신을 소개하거나 사정을 알리지 않아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던 ‘동네’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이제 주거지는 서로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고립된 장소가 되었다. 도시 곳곳에서 24시간 불을 밝힌 편의점은 언제든 무엇이나 살 수 있는 편리한 장소지만, 예전의 구멍가게처럼 서로 근황을 이야기하거나 노인들에게 맞는 정보를 나누는 살가운 장소는 아니다.
이런 과거의 시간과 장소 경험을 몸에 새긴 채 살아가는 노인들은 각종 서비스 산업에서 만나는 상품화된 친절과 미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모퉁이 찻집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해가며 느긋하게 주문하던 사람은 줄을 서서 자신의 기호에 맞는 음료를 재빨리 주문해야 하는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무릎까지 꿇고 받는 주문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해왔던 사회적 역할을 잃고 가족 관계조차 무너진 상태에서, 적응해야 할 현대 사회의 질서는 이질적이기만 하다.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른 속도와 정교한 매뉴얼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고독과 고립감 속에 잠겨 현대 사회 속 젊은 세대와 불화를 일으킨다. 불화의 결과가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비상식적으로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폭력은 밖으로도 드러나지만 안으로도 폭발한다.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단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세대가 고립감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를 마음에 안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타인이 필요하다는 처방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