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2013년 10월 삼성전자 서비스의 한 30대 직원은 “그동안 삼성 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고 적힌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사람이 ‘배가 고팠다’는 것이다. 전자회사 서비스 부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김기수 씨에게 그의 죽음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앞으로도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한 건수에 따라 나오는 급여는 고객 평가에 따라 수수료까지 깎이고 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끝을 흐리는 김기수 씨. 비슷한 처지의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막막하다고 말한다. 가장의 임금에 기대고 있던 가정들이 무너지며 이혼율과 자살률이 함께 올라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열심히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삶에 최소한의 확실성과 안정감을 주지 않는다.
노력해도 이룰 수 없다는 인식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긴다. 희망은 비약적인 것이 아니다. 한 단계를 밟은 뒤 다른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때 갖게 되는 것이 희망이다. 그런데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는다면, 혹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라고 생각되면 희망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좌절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좌절감이 팽배해 있다.
안정된 일자리가 왜 중요할까? 2008년, 쌍용자동차 매각으로 정리 해고와 희망 퇴직이 이어졌고 많은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그때부터 2015년에 이르기까지 7년 동안 해고자 가정에서 28명의 자살자가 나왔다. 열심히 일했지만 회계 조작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사람들은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싸웠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구속,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금, 가압류였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그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간신히 얻은 비정규직에서도 쫓겨났다.
해고를 당하면 당장 먹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존감을 잃게 된다. 사람들은 직업을 통해 존재 의미를 확인한다. 사회 내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의를 깨닫는다. 때문에 직장이 불안정하여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은 사회 내에서 자신이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더구나 비정규직은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렵고 동료와의 관계 또한 일시적이기 때문에 사회 관계망도 쉽게 단절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존재 의미에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좌절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