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Nov 06. 2017

09.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당신이 알지 못했던 걸작의 비밀>



무명으로 묻혀 있던 반 고흐가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유명해졌을까? 1941년까지는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별이 빛나는 밤〉이 어떻게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을까? 이 그림은 반 고흐의 인생뿐 아니라 삶의 철학, 예술적 업적, 인간관계를 모두 대표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많은 역할이 이 작품에 부여되었다.


학자들은 반 고흐의 삶의 철학을 이 그림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한 학자는 이 작품이 예수의 ‘동산에서의 고뇌’의 현대적인 버전으로, 고흐가 전통적인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전통적으로 묘지의 상징이므로,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죽음의 개념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자는 ‘소용돌이치는 하늘, 해처럼 밝은 달, 혜성이 되어 쏟아지는 은하수, 폭발하는 별들—천상의 힘과 황홀한 교감을 나누고 있는 신비주의자의 독특하고 압도적인 상상’ 속에서 상징성을 발견했다.

왜 반 고흐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 하필이면 그의 초상화도 아닌 이 그림이, 화가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처럼 여겨질까? 이것은 반 고흐가 미술계에서 진지한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화가의 전형적인 예로 유명해졌으며, 그림을 통해 내면의 격동을 표현한 인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해석의 주된 증거는 그가 썼던 몇백 통의 사적인 편지들이었다. 이 편지들은 마치 위대한 문학작품처럼 철저한 비평과 연구, 분석의 대상이 되어왔다. 반 고흐가 이러한 사생활의 폭로나, 혹은 자신에게 붙여진 ‘광인,’ ‘사회적 낙오자’ 등의 호칭을 탐탁스러워했을지는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였다는 클리셰를 믿었다. 사회의 외면 속에서 고통받은 예술가라는 분위기는 반 고흐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반 고흐가 이러한 길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이런 고정관념 아래에는 화가가 사회의 인정과 승인을 간절히 원했는데 대중이 무지해서 그를 버렸을 거라는 추정이 존재한다.

반 고흐는 극적인 전기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중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자살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새롭게 집필한 전기에서는 그가 살해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저자들은 사망 현장에 총도 유언장도 없었으며 총알이 몸을 관통한 각도가 자살이라기에는 이상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이야기도 의문으로 가득한 그의 삶에 또 다른 의문을 더해주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학자들은 그의 삶을 재창조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에듀테인먼트’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그의 그림 속의 여러 요소에서 상징성을 찾아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 속에서 길을 잃다”-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02. 에스키모인들이 화를 푸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