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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7. 2017

10.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마지막 회)

<당신이 알지 못했던 걸작의 비밀>



워홀은 예술가 스스로 자신만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바도르 달리로부터 배웠다. (대중이 단지 자신의 그림을 보기만 해도 열광적으로 환영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화가들에게는 예상 밖의 실패가 기다리기 마련이다) 달리는 유명해지기 위해 미국의 TV 게임 쇼 〈왓츠 마이 라인(What’s My Line)〉에 출연하는 등의 기이한 행동들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워홀에 비하면 아마추어였다.


워홀은 성인이 된 후 거의 모든 밤을 파티장에서 보냈다.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파티에서 그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줍어하기도 하고 뚱해 있기도 하고 특이한 행동을 하거나 활기에 넘쳐 있거나 남의 소문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했고, 이것은 불편한 결과들을 불러왔다. 때때로 워홀의 등장은 파티 손님들의 흥을 완전히 깨어 놓곤 했다.

때때로 그는 S&H의 그린 스탬프북과 캠벨 수프 상표 위에 사인해주며 유명한 팝 아티스트의 역할을 수행했다.



워홀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고, 당연히 어디서든 돈이 되는 일을 추구했다. 그는 친구를 가려서 사귀지 않았다. 유력 인사들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레이건 부부를 아주 좋아해서, 그들이 백악관에 우아함과 품격을 다시 불러왔다고도 말했다. 이란 대사관에도 툭하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미술과 동떨어져 보낸 사람이 작품 활동을 얼마나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질 정도다.

워홀은 어린 시절 다른 미국인들처럼 유명인에 열광했으며, 어른이 된 후에는 본인이 그러한 열광의 대상이 되었다. 예능 잡지와 라디오 시리즈에 빠져 살던 어린 워홀은 1950년대가 되자 그 당시 대중화되고 있던 TV로 관심을 돌렸다. 명성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던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사라지고 싶다. 사람들은 ‘그가 오늘 죽었다’고 하지 않고 ‘그가 사라졌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래나 재가 된다는 생각은 마음에 든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다란 반지로 환생한다면 정말 근사할 것이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음, 음, 좋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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