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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7. 2017

09. 부코이랑 사건

<꼬마 철학자>



생 테오필 축제와 함께 방학은 완전히 끝났다.

그 뒤로는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영락없이 참회의 화요일 다음 날 같은 분위기[기독교의 전통에서 보면, 이날은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상기하는 날이다]였다. 교사나 학생들의 모습에서는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권태로움이 느껴졌다. 두 달씩이나 푹 쉬고 난 뒤에 다시 이전의 팽팽한 생활 리듬을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태엽 감는 걸 잊어버린 낡은 벽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모든 일이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비오 씨가 설치고 다닌 덕분에 학교는 서서히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똑같은 시각에 등교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운동장의 곁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병정개미 떼처럼 어색한 걸음걸이로 둘씩 짝을 지어 나무 밑을 줄줄이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종소리가 땡! 땡! 다시 울리면 똑같은 아이들이 똑같은 곁문 아래를 다시 지나갔다. 땡! 땡! 일어날 시간입니다! 땡! 땡!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땡! 땡! 공부할 시간입니다! 땡! 땡! 쉬는 시간입니다! 이런 식으로 1년 내내 계속되는 것이었다.

오, 규칙의 승리여! 메날크 같은 학생은 모범적인 사를랑드 중학교에서 비오 씨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지내는 걸 만족스러워했을지 모른다.

오직 나만이 이 근사한 그림에 오점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중급반 아이들은 도무지 그런 규칙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산악지방에 있는 자기 집에서 한층 더 혐오스럽고, 악랄하고, 사나워진 모습으로 내게 돌아왔다. 내 성격 또한 까다로워졌다. 병을 앓고 난 뒤로는 툭하면 화를 내는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견뎌낼 수가 없었다……. 방학 전만 해도 지나칠 정도로 온순하기만 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된 뒤에는 모든 일에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게 굴었다. 심술궂은 악동들을 굴복시켜보고 싶은 충동 또한 강렬하게 느껴져서 아이들이 조금만 엉뚱한 짓을 하거나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벌로 숙제를 내주거나 방과 후 교실에 남도록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벌을 계속 남발하다 보니 별 효과도 거둘 수 없었고, 마침내는 1797년의 아시냐 지폐만큼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집정내각 초에 아시냐 지폐의 실제 가치는 그 액면가의 1백 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선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중급반 아이들은 내게 정면으로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 내게는 그걸 진압할 만한 무기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교단에 선 채 고함과 눈물, 불평, 야유가 비 오듯 쏟아지는 와중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꼬마 선생을 쫓아내자! 다들 궐기하라! 폭군은 물러가야 한다! 불의를 추방하자!”

그들은 교탁을 향해 잉크병과 딱딱한 종이를 내던지며 마치 정글 속의 원숭이들처럼 괴성을 지르면서 떼거지로 내게 달려들어 매달렸다.

어쩔 수 없이 비오 씨에게 도움을 청해야 될 때도 이따금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심한 모욕감을 느꼈겠는가 생각해보라! 생 테오필 축제 이후로 그는 나를 용서하지 않고 내가 곤경에 빠져 허우적댈 때마다 은근히 즐기는 눈치였다.

그가 손에 열쇠 꾸러미를 든 채 부랴부랴 교실로 들어서면 교실은 마치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연못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다들 눈 깜짝할 시간에 제자리로 돌아가서는 책에다 코를 처박는 것이었다. 교실 안은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아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러면 비오 씨는 이 깊은 침묵 속에서 열쇠 꾸러미를 흔들며 잠시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런 뒤 빈정거리는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없이 휑하니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내게 주어진 듯싶었다. 동료 교사들까지도 대놓고 나를 비웃었다. 교장도 나와 마주치면 그다지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오 씨가 뭔가 수작을 부렸음이 분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코이랑 사건까지 터졌다.

아, 그 부코이랑 사건! 틀림없이 이 사건은 그 해의 가장 큰 사건으로 학교연감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며, 지금까지도 사를랑드 사람들은 이 사건을 들먹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끔찍한 사건의 내막을 밝히고 싶다. 독자들이 진실을 알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뭉툭한 발에 개구리처럼 툭 불거진 눈과 솥뚜껑 같은 손을 가진 열다섯 살 된 부코이랑은 중급반 운동장을 제 집정원처럼 휩쓸고 다니는 뻔뻔하고 건방진 녀석으로서, 사를랑드 중학교에서는 유일한 세벤느 지방 귀족이었다. 교장은 그 녀석이 다님으로 해서 학교가 귀족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고는 깍듯이 대하며 자기 아들처럼 아꼈다. 학교에서는 녀석을‘후작’이라는 칭호로만 불렀다. 모두들 그를 두려워했다. 나 또한 그런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녀석에게 말을 할 때는 될수록 신중을 기했다.

얼마 동안 우리는 탈 없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후작 녀석은 꼭 앙시앵레짐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때때로 오만불손한 태도로 나를 쳐다보거나 말대꾸를 서슴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강적을 만났다는 생각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시간 중에 그 깡패 같은 후작 녀석이 불손한 말로 대꾸를 하자 나는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그에게 말했다.

“드 부코이랑군, 책을 챙겨서 지금 당장 나가라.”

그건 녀석으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만큼 권위 있는 행위였다. 녀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내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가라니까, 드 부코이랑군!”

나는 다시 한번 명령했다.

아이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침묵시킨 것이었다.

내 두 번째 명령에 정신을 차린 후작 녀석은 느긋한 표정을 되찾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안 나가겠어요!”

감탄스러운 수군거림이 교실 안에 퍼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교단에서 일어섰다.

"안 나가겠다고? 그래, 못 나가겠다 이거지?”

나는 교단에서 내려섰다.

하늘에 맹세코, 폭력을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내 단호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그 녀석에게 겁을 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교단에서 내려서는 걸 본 그 녀석이 가소롭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계속 이죽거렸기 때문에 나는 녀석을 의자에서 끌어내려고 와락 멱살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 야비한 녀석은 윗도리 속에다 커다란 쇠자를 감춰 두고 있었다. 내가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녀석이 내 팔을 쇠자로 힘껏 후려쳤다. 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학생들이 손뼉을 쳐댔다.

“후작, 잘한다!”

순간, 나는 머리가 홱 돌아버렸다. 단숨에 책상 위로 뛰어오른 나는 후작 녀석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발과 주먹, 이빨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 녀석을 자리에서 끌어낸 다음 교실 밖 운동장 한가운데로 밀쳐내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 힘이 그렇게 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학생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후작, 잘한다!”라는 고함도 지르지 못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학교의 최강자인 부코이랑이 난쟁이같이 생긴 자습감독 교사한테 꼼짝 못하다니! 이거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실추된 권위를 되찾았고, 후작 녀석은 위신을 잃은 것이었다.

내가 여전히 흥분된 표정으로 온몸을 떨면서 창백한 얼굴로 교단으로 올라가자 학생들은 얼굴을 책상 위에 푹 숙였다. 그들은 이제 내게 한풀 꺾인 것이다. 하지만 교장과 비오 씨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어떻게 하지? 결국 학생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으니! 쫓겨나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녀석에게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영 찜찜하기만 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후작 녀석이 지금쯤 분명히 어딘가로 가서 고자질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교장이 언제 어느 때 교실 문을 박차고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자습시간 내내 마음을 졸이며 떨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부코이랑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웃고 뛰노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자 나는 그 녀석이 교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건이 터진 날은 불행히도 외출이 허용된 목요일이었고, 후작 녀석은 밤이 되어도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며 긴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첫 번째 자습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부코이랑의 빈자리를 바라보면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나는 내색도 못한 채 불안하고 초조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7시경,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 같았다.

맨 앞에 교장을 위시해서 비오 씨가 따라 들어오더니 곧이어 턱까지 단추를 채운 긴 외투에 20센티가량 되는 뻣뻣한 넥타이를 늘어뜨린 키 큰 노인이 차례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노인네였으나 그가 부코이랑의 아버지 드 부코이랑 후작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긴 콧수염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뭐라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교단에서 내려설 용기조차 없었다. 그들 역시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교실 한가운데 버티고 선 세 사람은 나갈 때까지 내 쪽으로는 아예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교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는 고통스런, 아주 고통스런 임무를 수행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여러분의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너무나 무거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일단 입을 열어 비난을 쏟아붓기 시작한 그는 15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나를 매도했다. 하지만 모든 게 다 왜곡된 거짓말이었다. 후작 녀석은 가장 우수한 학생인데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트집을 잡아서 학대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자습감독 교사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교사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 같은 비난에 뭐라고 대꾸한다는 말인가?

때때로 나는 변명을 하려고 애썼다. “잠깐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교장선생님!”하지만 그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끝까지 나를 공개 비난하는 것이었다.



교장의 말이 끝나자 드 부코이랑 후작이 뒤를 이었는데, 영락없이 검사가 논고를 하는 투였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영락없이 내가 그의 아들을 때려죽이기라도 한 줄 알았을 것이다. 아무런 방어 태세도 갖추지 못한 불쌍한 나를 향해 그들은 마치, 마치…… 뭐라고 비유를 해야 할까? 마치 물소처럼 덤벼들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후작 녀석은 아예 병석에 드러누웠다는 것이다. 이틀 전부터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짜며 그 녀석을 간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 혹시 나이 든 어른이 내 금쪽같은 아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난 주저 없이 복수를 했겠지. 하지만 어린 망나니가 한 짓이니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기로 하지……. 하지만 분명히 해둘 얘기가 있는데, 앞으로 누가 됐건 내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 녀석의 두 귀를 싹둑 잘라버리겠다.”

그들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학생들은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비오 씨의 열쇠 꾸러미는 기쁨으로 짤랑거렸다.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진 나는 교단에 선 채 모든 모욕을 참아내기로 다짐하면서, 그들의 갖은 폭언을 묵묵히 듣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자칫 한마디라도 잘못 했다간 학교에서 쫓겨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거의 한 시간을 떠벌리고 나더니 이제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는지 그 세 사람은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자 교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부코이랑 사건은 나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그건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모든 사를랑드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장교클럽에서도, 하사관 클럽에서도, 카페에서도, 연주회에서도 그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난무했다. 사람들은 자기야말로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떠벌리면서 머리칼이 곤두설 만큼 상세하게 묘사했다. 졸지에 나는 상상도 못할 만큼 교묘하고 잔인하게 어린아이를 고문하는 유령이, 식인귀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말할 때면‘냉혈한’이라고 불렀다.

부코이랑 녀석이 하루 종일 침대에만 있는 걸 지겨워하자 그의 부모는 녀석을 긴 소파에 눕혀 응접실의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옮겨놓았고, 그 이후로 여드레 동안이 응접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사람들은 이 흥미로운 희생자에게 온갖 관심을 쏟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찾아와 그 사건의 전말을 직접 듣고 싶어 했으며, 그러면 이 비열한 녀석은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서 덧붙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부인네들은 부르르 치를 떨었고, 노처녀들은 그를 ‘불쌍한 천사’라고 부르며 슬그머니 사탕을 쥐여주기도 했다. 야당(野黨)계 신문은 이 사건을 이용하여 공립학교를 맹렬히 비난하고 인근의 종교학교를 옹호하는 기사를 실었다.

교장은 노발대발했다. 교육감이 옹호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해고당했으리라. 하기야, 차라리 해고당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지도 몰랐다. 이제는 학교생활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들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다 입만 벙긋해도 자기도 부코이랑처럼 아버지한테 일러바치겠다고 을러대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그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모든 와중에서 내 뇌리에 박혀있는 건 오직 한 가지, 부코이랑집안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늙은 후작이 불손한 태도로 나를 윽박지르던 일을 떠올리면 분노로 귀까지 달아올랐다. 그때 당한 모욕을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산책 시간에 에베쉐 카페 앞을 지나갈 때마다 드 부코이랑 후작은 모자를 벗은 채 손에 당구 큐대를 든 주둔군 장교들에게 둘러싸여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야유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내 목소리가 들릴 만큼 학생들과 가까워지면 후작은 도전적인 눈길로 나를 훑어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괜찮냐, 부코이랑?”
“네, 아버지!”

그 고약한 녀석은 줄 가운데서 일부러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장교들과 학생들, 카페의 급사들까지 모두 왁자지껄하게 웃는 것이었다.

‘오늘은 괜찮냐, 부코이랑?’이라는 말은 내게는 너무도 끔찍한 형벌이었지만 그걸 피할 방법이 없었다. 프레리를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에베쉐 카페 앞을 지나쳐야 했으며, 그때마다 늙은 후작은 꼭 그 카페 문 앞에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나는 늙은 후작에게 도전해보고 싶은 무모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우선은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후작이 차고 다니는 결투용 장검(長劍) 때문이었다. 밑쪽이 굵고 끝이 뾰족한 괴상한 모양의 그 칼은 그가 경비대에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벤 무시무시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도저히 더 이상 견뎌내기가 힘들게 된 나는 체육 교사인 로제에게 찾아갔고, 후작과 한번 겨뤄보겠다는 결심을 단도직입적으로 털어놓고 말았다. 오랫동안 서로 얘기를 나눠보지 못했던 로제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내 말을 모두 듣고 난 그는 감동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두 손을 맞잡아 힘껏 쥐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니엘 씨, 정말 훌륭한 결심을 하셨소.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염탐꾼 노릇을 못하리라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왜 비오 씨한테 늘 쩔쩔맸나요? 두고 보시오. 모든 일은 잊혀질 거요. 당신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겁니다. 이제 보니 당신은 참 의젓한 인물이로군요. 자, 이젠 당신이 복수할 차례요. 모욕을 당했다구요? 좋아요! 사죄를 받고 싶지요? 좋아요! 좋아요, 좋다구요! 그 늙은 영감탱이의 칼에 찔리지 않도록 내가 도와줬으면 하는 거죠? 좋아요! 연습장으로 갑시다. 여섯 달만 연습하면 당신은 그 늙은이를 이길 수 있을 거요.”

로제가 열을 내며 내가 후작과 결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나는 기쁨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일주일에 세 시간씩 그에게서 펜싱을 배우기로 하는 한편 교습비는 특별히 따로 정했다(과연, 그건 특별가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게서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나 많은 교습비를 챙겼던 것이다). 펜싱을 배우는 데 필요한 일체의 계약사항을 정하고 난 로제는 정답게 내 팔짱을 꼈다.

“다니엘 씨, 오늘은 너무 늦어서 첫 수업을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하지만 바르베트 카페에 가서 계약을 조인할 수는 있어요. 갑시다! 자, 이제 어린애처럼 굴 때는 지나갔어요. 혹시 바르베트 카페에 가기가 겁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 되는 겁니다, 제기랄! 유식한 체 그만하시고……. 거기 가면 마음이 넓은 아주 괜찮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당신은 여자 같은 티를 벗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나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는 바르베트 카페로 갔다. 그곳은 여전했다. 고함소리, 담배 연기, 새빨간 군복 바지, 그리고 똑같은 모양의 군모(軍帽)와 혁대가 여전히 모자걸이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로제의 친구들은 쌍수를 들어 나를 환영했다. 로제의 말대로 그들은 모두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었다. 나와 후작 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알게 된 그들은 한 명씩 차례차례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잘했소, 젊은이. 정말 잘했어.”

나 역시 마음이 넓은 인물이었다. 우리는 내가 주문한 펀치(레몬주스·설탕·포도주 등 5가지 이상을 혼합한 알코올성 음료)를 마시면서 승리를 다짐했고, 학년말에 드 부코이랑 후작을 단칼에 쓰러뜨리기로 한다는 결정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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