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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1. 2016

03. 회색빛 우울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1960년대 후반 들어 서울에서의 생활은 점차 안정이 되었지만, 도시의 경직된 안락은 오히려 그녀의 삶을 권태로 몰아넣었다. 사주에 천고(天孤)가 들어 있는 것인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생활이 안정될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고독감과 우울감이 커지고 있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천고는 인간의 삼고三苦 중에서 가장 힘든 것으로, 이것이 지나치면 자살까지 이르는 치명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천경자는 고독을 인간의 실존으로 여겼고, 아름다움은 오직 고독을 통해서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사랑할 때는 두 사람의 고독이 합쳐진 더 큰 고독이 있고, 
혼자일 때에는 울 수도 없는 고독이 있을 뿐이다.

천경자의 예술은 철저한 고독의 산물이다. 그녀는 “벽에 부딪치고 싶은 외로움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고, 예술은 철저하게 홀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창작을 위해 짙은 고독을 죽음 같은 해방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외로운 길을 자처했다.

파괴를 통한 창조를 위해서는 때로 고립도 필요하다. 세상과 영합하고 대열에 끼지 못하면 호적이 없는 것처럼 세상살이까지 고달파지지만, 내 경우는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운명적인 고통이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안정되고 작가로서의 기반이 잡혀갈 무렵, 그녀는 역설적으로 위기의식이 생겼다. 감정의 기복이 큰 그녀는 가끔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그런 자살 충동을 관조하며 그린 작품이 <자살의 미>15이다. 우울한 회색빛 하늘에 음산한 구름이 너울거리는 이 작품에는 칼날이 날카로운 믹서기가 있고, 믹서기 안에는 자신의 분신인 탈색된 수선화를 그려 넣어 위태로운 심리상태를 드러냈다. 누군가 나타나서 버튼만 누르면 수선화는 무참히 갈아져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믹서기 밖으로 빠져나온 가느다란 손은 절박한 심정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듯하다. 그녀는 수선화라는 대용물을 통해 자신의 충동을 관조한 것이다.

<자살의 미>, 1968, 종이에 채색, 137x95cm


이 작품에서는 화려한 꽃무리가 사라지고, 침울하고 불안한 회색빛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칸딘스키가 회색이 짙을수록 절망감이 커진다고 했듯이, 회색은 생동감을 거부하고 변화를 바라지 않는 암울한 감정을 반영한다. 고흐도 그랬지만, 천경자는 우울감이 지배할 때 암울한 청회색을 주로 사용했다.

1969년 또다시 찾아온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을 때 천경자는 불현듯 뱀을 떠올렸다. 불행의 늪에 빠져 있던 20대 때 오직 살기 위해 그린 뱀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뱀을 다시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면 뱀이 수호신처럼 자신을 또다시 수렁에서 구원해줄 것만 같았다.

그림 속의 뱀은 저보고 더 정신 차리라고 채찍질해요. 
절망스러울 때마다 뱀을 그리고 싶어요.

천경자는 150호 정도의 거대한 캔버스에 혼신의 힘을 다해 <사군도>16를 그리기 시작했다. 과거 35마리의 뱀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20대 때의 그림과 달리 이번에는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대담하게 화폭 중앙에 그려 넣었다. 여기에 새롭게 익힌 채색 기법으로 환상적인 색채가 넘실거리게 하였다. 천경자는 자신에게 새로운 운명이 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색채에 담아 뱀 그림을 완성시켰다.

<사군도>, 1969, 종이에 채색, 198x136.5cm


이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천경자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과거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은 것처럼, 이제는 서울을 떠나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낭만을 펼칠 장소를 찾아 장기간의 세계 일주를 계획하였다.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 컸고, 남편과의 관계를 얽어맬 아무런 법적인 끈도 없었다.

남편과의 낭만적인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상처가 커졌고, 지루하게 계속된 신경전으로 피곤해졌다. 그녀는 오직 작가로서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꿈과 열정을 불태울 장소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969년 5월 신문회관에서 28점으로 《도불기념 개인전》을 열고, 꿈에 그리던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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