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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8. 2017

03. 제가 좀 호기심이 많습니다.

<백만장자와 함께한 배낭여행>



관찰

아까부터 선생은 미동도 하지 않고 창밖을 보고 있다. 이륙할 때는 그저 창밖으로 지상의 건물과 도로들이 장난감처럼 작아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3시간이 지나도록 선생은 창밖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요리사에서 부산 최고의 횟집 경영자로,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주식 투자자로 변신한 박 선생이기에 특이한 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특이할 줄은 몰랐다. 비행기에서 장장 3시간 동안 창밖만 들여다보고 있다니.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 아까부터 계속 창밖만 보고 계시네요.”

그러자 선생은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은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제가 좀 호기심이 많습니다.”
“…”



10여 년을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다. 뭔가 어색하기도 해서 더 이상 묻지 않고 두리번두리번 하릴없이 비행기 안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다시 선생을 봐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자꾸 캐묻기 좀 그렇지만 다시 물었다.
“선생님, 창밖에 뭔가 재미있는 게 있나요?”

그제서야 선생은 창에서 눈을 떼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구름의 모양에 따라 비행기 몸체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고 있었어요. 강 국장님, 그거 알아요? 저 창밖에 보이는 구름 있잖아요? 그 구름이 양털처럼 잔잔하게 펼쳐져 있으면 비행기도 흔들림 없이 잘 날아갑니다. 그러다가 구름 사이로 지상이 얼핏얼핏 보이고, 군데군데 세로로 세워진 구름 기둥이 보이면 어김없이 비행기가 요동을 칩니다. 뭐, 그런 것을 보고 있었어요.”

특이하다. 정말, 매우, 아주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 책을 보며 내려서 무엇을 할까 계획한다. 이게 자연스러운 거다. 하지만 선생은 이런 일은 아예 하려고도 안 한다.

그 대신 선생은 창밖을 보며 구름을 관찰한다. 작은 비행기와 큰 비행기의 고도 차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구름이 평평하게 잘 깔려 있는지 본다. 그렇게 여행 중에 비행기가 많이 흔들릴 곳을 예측하고, 평탄하게 날아갈 곳을 짐작한다. 그리고 비행기의 경로를 예상하며 지금이 중국 상공인지, 서해 근처인지를 확인한다. 도대체 왜?

다른 사람들은 보통 비행기에서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한다고 박 선생에게 말했다. 정 그런 것에 취미가 없으면 내려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고도 전했다.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난 리스크는 뚫어지게 관찰하고 움직임을 체크하고 대비합니다. 근데 노는 건 계획을 잘 안 세워요. 노는 건 나 좋자고 하는 건데, 일정에 얽매여 끌려다니는 것처럼 싫은 일이 어딨어요. 그래서 난 여행도 여행사 따라 잘 안 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위험을 자꾸 외면하려 한다. 리스크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골치 아프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 몰라, 몰라. 어떻게 되겠지.’ 그 대신 노는 데는 1분, 1초를 아껴가며 열심히 계획을 짠다. 온몸이 지쳐 떨어질 만큼 빈틈없이. 그래서 위험은 대비하지 못하고 놀 때도 제대로 놀지 못한다.

그런데 선생은 특이하다. 정반대다. 리스크에 대해서는 단 1초도 눈을 떼지 않으려 한다. 그게 설사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든, 항공기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든 늘 관찰해서 리스크를 감지하려고 한다. 그건 거의 선생의 본능 같은 것인가 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본다는 게 내 주의입니다. 하다못해 이 비행기가 추락하게 되면, 그걸 미리 알고 가방이라도 꺼내 그것으로 충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본다는 겁니다. 난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언젠가 선생이 내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였는데, 도로를 달릴 때도 항상 옆의 차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거였다. 맞은편에서 달리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올 경우, 핸들을 어디로 돌려서 어떻게 위험을 피할 것인지를 이미지트레이닝을 한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과장이 심하시네’ 하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함께 비행기를 타보니 그게 과장이 아니었다.

반면에 선생은 여행을 하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체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무심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분명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런던으로 날아가고 있음에도 “강국장님, 우리 처음 도착하는 유럽의 도시가 어디요?”라고 묻는다. 그것도 여러 번 묻는다. 뒷목을 잡을 뻔했다. ‘선생님, 탑승권에 또렷하게 적혀 있고요, 아까 인천공항 키오스크에도 분명히 런던이라고 나왔잖아요. 그리고 여행 전에 제가 몇 번을 말했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선생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서, 선생은 보통 사람과는 아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파악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선생의 그런 모습은 주식 투자를 할 때와 비슷한 것 같다. 주식도 끊임없이 시장을 관찰하는 것 아닌가. 선생은 주식에 입문할 무렵, 밤마다 경제 방송을 켜두고 미국 나스닥과 다우지수의 등락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고 한다. 자다가도 얼핏 일어나 지수를 확인하고 또 잠들었단다. 10여 년 전 선생이 주식 투자 책을 쓸 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주식 시황과 국내 상황, 기업의 공시를 예의주시했다는 거였다. 그렇게 여러 지표들을 예의주시하다보면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요동치는지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는 거였다.

‘이번 여행은 선생을 관찰하고 뜯어보고 그것을 내 안에 고스란히 복제하려 노력하는 여행이기도 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막상 위기 상황이 닥치자 우왕좌왕하게 됐다. 마음은 허방을 짚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왜 비상사태를 대비해 군대에서든 국가에서든 매뉴얼을 준비해놓는지 닥쳐보니 이해가 됐다. 개인도 비상시를 대비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가 피부로 느낀 일이었기에 선생의 리스크 ‘관찰’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대로 따라해봐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데 선생이 모니터에 비행기의 항로와 하늘에서 바라본 지상의 모습, 시차 등을 번갈아 보여주는 화면을 띄웠다. 슬슬 기내에서 영화나 한 편 볼까 했던 나 역시 선생을 따라 같은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그렇게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에 내릴 때까지 선생과 나는 12시간 동안 그 화면을 바라보며 비행을 했다. 선생의 호기심은 놀라울 정도였고,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강 국장님, 여기는 지금 어디예요?”
“강 국장님, 이제 중국인가?”
“강 국장님, 아직도 러시아 땅이네?”
“강 국장님, 지금 고도가 3만 피트를 넘었네요.”
“강 국장님?”

선생은 끊임없이 화면에 올라오는 수치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현재 비행기의 진동 상태를 종합하고 있었다.

착륙 직전에 내가 선생에게 물었다.
“한숨도 안 주무시고 계속 비행 상태를 체크하시던데요. 안 힘드세요?”

그러자 선생은 무슨 소리냐는 듯 웃으며 답했다.
“난 이런 거 정말 좋아해요. 재미있어요.”

이런, 혹시 선생은 외계인이 아닐까.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번 여행, 만만치 않겠구나.’

머릿속에서 그런 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번 부딪혀보자.’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꾹 쥐었다.
‘죽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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