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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9. 2017

02. 의대생에서 가난한 음대생으로

<클래식에서 리더의 언어를 배우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람이 되라.
|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
Louis-Hector Berlioz, 1803-1869


베를리오즈는 의사인 아버지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와 형제들은 아버지에게서 라틴어, 문학, 음악 등을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정규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는 독특한 교육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아버지 눈에 비친 베를리오즈는 음악적 비범함이 없는 아이였다.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인정할 만했지만 이렇다 할 특별한 재능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베를리오즈가 열여덟 살이 되자 아버지는 파리에 있는 의대에 진학시켰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해부실에 놓인 시체들만 봐도 질겁하여 줄행랑치기 일쑤였다. 반면, 학교 밖 세상은 흥미로웠다. 그는 파리의 수많은 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같은 연극 공연을 보고 나면 흥분 때문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페라극장에서 독일의 작곡가 글루크의 작품을 보았던 날,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를 들은 날에는 그 감흥이 지워지지 않아 밤을 지새워야 할 정도였다. 그는 당장 음악원에 가서 청강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의사의 길을 접고 음악인이 될 결심을 했다.

예상대로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학비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의대에 가면 학비를 대주겠지만 다른 곳은 어림도 없어!”

베를리오즈는 한순간 가난한 고학생이 되어버렸다. 학비도 생활비도 없이 그는 극장을 들락거리며 독학으로 음악을 깨우쳐 나아갔다. 겨우 파리음악원에 입학 허가를 받은 뒤에도 부모님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장학금과 유학의 기회가 제공되는 로마대상을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끈기로 다섯 번째 도전 끝에 당당히 로마대상을 따냈다. 1830년 8월, 칸타타 〈사르다나팔(Sardanapale)〉이 그의 4전 5기로 이뤄낸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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