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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6. 2017

07. 바르셀로나, 다시 시작하는 곳

<백만장자와 함께한 배낭여행>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6시간 반의 기차 여행 끝에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 내렸다. 유럽의 남쪽 바르셀로나의 날씨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파리를 떠날 때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게 했는데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마음까지 녹여내는 듯 따사로웠다.

잔뜩 짊어진 짐이 부담스러웠고 오랜 기차 여행에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다. 결국 배낭여행자답지 않게 값비싼 택시에 올라타고 숙소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 풍경을 살피던 선생은 안타까워했다.

“한때 대단한 영화를 누렸을지 모르지만 거리의 활력이나 사람들의 행색이 파리만 못하네요.”


호텔에 짐을 푼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바르셀로나 비치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부산의 해운대 같은 느낌을 주는 바닷가였다. 이곳저곳 사람들이 꽤 붐볐다. 선생은 한동안 그들을 날카롭게 바라보다 파에야와 함께 시킨 새우 요리 한 점을 삼키며 말했다.

“내가 왜 바르셀로나 풍경을 보며 안타까워하는지 의아하겠지요. 하지만 내게는 보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을 보면 국민소득 만 불 정도 수준이에요. 반면에 바다 한가득 메우고 있는 요트들을 보면 이곳 부자들의 엄청난 부를 느낄 수 있어요. 양극화가 엄청나게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선생은 스페인의 재정이 바닥났다는 것과 유로를 쓸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들의 손해에 대해 설명했다. 만에 하나 오일 가격이 치솟을 경우 스페인이 겪게 될 고통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산업 경쟁력이 있는 나라들은 오일 가격이 오르면, 그 오일을 생산하는 중동이나 기타 국가들에 들어가는 수출 상품 역시 늘어납니다. 그래서 오일 가격이 오른 만큼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와 오일 쇼크를 함께 받아 안게 되기 때문에 곤궁해지는 거예요.”

선생의 설명은 거침없었다. 그런 선생의 목소리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격앙되어 있었다. 마치 스페인의 경제적인 침체와 당신의 삶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듯이.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강 국장님도 대략 알고 있지만 나는 어린 시절 거의 고아처럼 살았어요. 그 시절 한때는 부모를 원망했지요. 나를 버리다시피 한 부모가 원망스러웠던 게 아니라 차라리 입양이라도 시켜주지 않은 게 애통했어요.”

선생이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 품마저 떠나게 되었다는 얘기는 예전에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뒤 일곱 살 때까지 외할머니댁에 있다가 다시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 친척 집에서 구박을 받다가 15세에 부산으로 도망쳤고 거기서 일식집 주방 보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은 차 안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어렸을 때 외국으로 입양될 뻔한 적이 있었어요. 외할머니댁에 나를 맡긴 어머니가 날 입양 보내려고 신청을 했던 모양이에요. 관계 기관에서 찾아온 사람이 나를 꽤 멀리까지 데리고 갔는데, 외할머니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날 다시 찾아왔어요. 당신은 쑥갓을 키워 팔고 고구마 이삭을 주워서라도 나를 먹여 살리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그게 가끔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차라리 그때 입양을 시켜주지, 왜 굳이 나를 다시 찾아왔을까. 그렇게 못된 생각까지 했었지요.”

나는 조용히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 선생의 손을 잡았다. 선생의 소년 시절이 애잔해서였다. 말로는 어루만질 수 없을 듯한 슬픔을, 내 손의 따뜻한 온기로나마 공감해주고 싶었다.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선생은 멋쩍은 듯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외로움? 허, 그 녀석은 내 친구지 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나는 선생의 이런 쓸쓸한 유머가 좋다. 지독한 현실에서 잠시 도망치기 위해 단련한 선생의 재담은 유명 코미디언의 개그보다 좋다.

선생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강 국장님도 예전의 나처럼 더 날카롭게 자신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아픈 말이겠지만 이제 강 국장님도 나이가 꽤 됐어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다이아몬드처럼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키세요. 강 국장님이 내 말을 잘 알아듣고 내 마음을 잘 이해하니 내가 조금 독하게 말할게요. 지금보다 더 낮아지세요. 남들 먹는 것처럼 먹고 남들 입는 것처럼 입고 남들 하는 것처럼 다 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 해이해질 겁니다. 스페인이 과거의 영광에 취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지 못했을 때, 지금의 어려움이 닥쳐온 거지요. 훨씬 더 크고 강하게 꿈을 꿔나가고, 그 꿈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 겁니다. 나라도, 사람도요.”

우리의 이야기는 호텔 방 안에 들어와서도 계속됐다. 선생은 어느 틈엔가 나의 고민과 걱정과 불안을 공감하고 있었다. 나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선생은 나의 초조함과 절박함을 알고 있었다. 섣불리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질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강 국장님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람에게는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시기라는 게 있어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과 지혜는 쌓여갈지 모르지만 그에 비례해서 열정은 사그라들거든요. 무언가를 위해 온몸을 불사를 수 있는 열정이야말로 성공을 위한 가장 큰 재료인데 말이지요.”

두려움이 밀려왔다. 후회도 됐다. 그런 한편으로 열정을 불살라 보고 싶다는 갈증이 밀려들었다. 그때 선생이 그 마음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강 국장님, 엄청난 파도가 달려들 때, 선장이 겁을 먹고 배를 옆으로 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
“그대로 뒤집혀 버립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면으로 파도를 뚫고 나가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면 뭐든지 합니다. 나를 봐요. 내가 이뤄놓은 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어릴 적 내 형편과 처지를 알았던 사람이 보면 기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상식만으로 생각하면 나는 이미 죽었거나 아주 밑바닥 삶을 살고 있어야 하지요. 그러니 해보세요. 길이 있다고 믿고, 그 믿음을 쉬이 흩뜨리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뚫고 나가세요.”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선생은 조금 있다가 치를 주식 전투를 위해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호텔 밖으로 잠시 머리를 식히러 나왔다. 스페인의 밤공기는 기분 좋게 선선했다. 정열의 나라에서 열정에 불을 지펴 가는구나.

먼 훗날, 바르셀로나는 다시 시작하는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다시 일어서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뜨겁게, 스페인의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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