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트렌드 노트>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쾌적하고 포근한 나만의 공간, 내 집이 가진 이미지와 금전적 가치에 대한 만족감 등을 느끼고 있다면 욕구충족의 4단계까지 모두 이룬 행복한 사람들일까?
한국의 내 집 보유율은 53% 수준이고, 주 소비층인 40대 미만으로 좁혀보면 30%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젊은 층일수록 내 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생애최초주택을 마련한 사람 10명 중 3명은 내 집 마련에 10년 이상 걸렸고, 그 전에 4번가량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내 집 마련의 여정은 길고도 번거롭다. 이런 과정을 겪는 이들에게 ‘아파트의 가치 향상을 위해 애쓰는’ 이야기는 배부른 하소연으로 들리거나,‘ 뭣이 중헌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나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내 집’에 대한 가치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30대 이상의 60~70%는 여전히 ‘내 집 마련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반대로 20대들의 68%는 ‘굳이 내 집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현재를 포기해가며 ‘내 집마련’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여정을 꾸역꾸역 가는 대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며 ‘YOLO’를 외치고 있다. 그들에게는 ‘No Pain, No Gain’, 즉 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다는 문장보다 ‘No Gain, No Pain’으로 단어순서가 바뀐 문장이 더 와 닿을 것이다. 얻는 게 없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고, 보람 따윈 됐으니 고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기며 살겠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다.
인생을 포기하고 앞을 내다보지 않으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조건 지르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대가 부르짖고 있는 YOLO는 겸허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참고 또 참고, 셀프 토닥토닥을 시전하고 ‘하드코어 인생아, 수고했어 오늘도’를 읊조리며 잠시의 일탈을 즐겨가면서 견뎌보자는 것이다. 집을 포기하고 집을 꿈꾸지 않으면 현재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늘어나고, 불안함도 없으니 마음의 여유가 더 생기고, 다시 이 여유를 통해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경험과 추억으로 더 많이 채울 수 있다.
이쯤 되면, 어쩌면 이들은 할 수 없이 집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라 인생의 가치를 깨달은, 인생살이 만랩을 찍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이들은 집을 통한 소속감이나(3단계) 자아존중(4단계)의 감정을 느끼는 단계는 가볍게 건너뛰고, 자신의 취향과 기분을 즐기는 자아실현의 욕구(5단계)를 추구하는 최상의 레벨에 있는 사람들이다.
삶의 질을 중심으로 각자의 만족도를 좇는 이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차피 가질 수 없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 집이라는 공간은 필수다. 그들의 집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집’ vs. ‘집근처’ 연관행위 키워드 네트워크
그들은 집의 역할을 ‘집근처’에서 충족하고 있다. ‘집근처’ 카페로 발길을 향하고, ‘집근처’ 쇼핑몰에서 여유를 즐긴다. 소셜 빅데이터 상에서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와 ‘집근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비교해보았다. ‘집’은 자고, 보고, 쉬는 휴식의 공간이자 외부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귀소본능의 공간이다. 이와 달리,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맞닥뜨리는 ‘집근처’는 또 다른 경험의 공간이다. 집근처에 새로운 매장이 생기면 한번 가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으면 다녀와 본다. 무작정 나선 집근처에서 궁금한 가게를 발견하고, 의외로 괜찮은 가게를 만나 반하기도 하면서 ‘발굴잼(발굴하는 재미)’을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 빨리 퇴근할 수 있으면, 집근처 새로 생긴 카페에 가봐야지. 그때까지 비가 오면 얼마나 멋진 하루일까.”
“집근처에 노브랜드 생겨서 다녀왔다. 치즈스틱이 가성비 좋다기에 한 봉 사고.”
“요즘 포켓몬은 나보다 신랑이 더 열심히 한다… 난 집밖에 나갈 일도 없고 집에서 계속 켜놓는 것도 번거롭고 한데 출근퇴근길마다 집근처 포켓스탑이니 체육관 걸어서 다녀오고 그럼.”
“집근처에 CGV가 가까워서 쉽게 영화 보러 가게 된 것도 있고, 돈 주고 봤으면 아까웠을 영화들의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맘 편하게 걸어가서 본 것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