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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6. 2017

03. 동네방네 청소 비상상황

<빗소리 몽환도>



사각사각 비가 내리고 있어 서둘러야 했다. 쓰레기들은 일단 젖으면 치우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데 굳이 왜 청소를 하냐고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외려 중요하다. 비가 더 오더라도 일은 끝내야 된다. 쓰레기들이 몰려 도시의 수챗구멍을 막는다면, 또 그것들이 넘쳐나는 물 위로 둥둥 떠다닌다면, 더구나 그것이 고인 물과 함께 썩어간다면, 어휴, 그 냄새란, 상상만 해도!

매일 청소해야 할 쓰레기는 시민들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정도다. 봄의 황사, 여름의 폭염, 가을의 낙엽, 혹독한 한파에도 상관없이 쓰레기들은 끊임없이 쌓인다. 그래서 그가 이 어둑어둑한 시각, 이른 새벽에 청승맞은 비를 맞으며 묵묵히 나서는 거다.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야 날이 밝아온다고 믿고 있다. 미신적이고 과대망상이라고 누구는 비웃을 수 있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더러운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는 사실 말고는.



날이 축축해 여느 때보다 그의 몸체가 격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한번 한번 앞으로 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눈을 번뜩인다. 쓰레기가 그의 사냥감. 이따금 그가 쓰레기라고 여겨져서 쓸어버리려는 순간 어디론가 증발하는 것들이 있다. 의아한 눈길로 둘러보면 그 괘씸한 것들은 어느새 고층빌딩에 매달린 대형 TV 속에 가 있다. 물론 보지 않을 때 다시금 길거리로 내려와 뒹굴며 놀고 있지만. 어떤 쓰레기들은 그렇다! 너무너무 높이 올라가 있다! 지금까지 일해 온 바에 의하면 정말 그렇다.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높은 빌딩이 성큼 둘러싼다. 위협적이닷! 크고 힘세 보이는 골리앗을 연상시키는 빌딩을 올려다보며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어떻게 창문들이 저토록 많담? 아마 저 안에도 쓰레기들이 많겠지? 길바닥보다 높은 곳의 쓰레기들은 깨끗할까, 아마도 그렇겠지, 주로 종이일 테니까, 계약이나 보험이나 서류나 날짜와 숫자들이 담긴 쓰레기들……. 그때 빗방울이 뚝, 눈꺼풀 위로 떨어진다. 에구, 그가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작업으로 돌아간다.

간혹 그는 길바닥에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누군가 전날 구토를 해놓아서 그렇다. 뭣 때문에 이렇게 게워 놓았는가 따위는 질문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토할 일이 많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것들은 언제나 병이다. 아픈 병이 아니라 마시는 병 말이다. 어디서나 빈 병들이 나뒹굴고 있다. 술병에서부터 각종 음료수병까지. 한 모금을 마시고 영원한 쓰레기를 남기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중엔 해가 되는 것도 많을 텐데……. 아무래도 잠깐 쓰고 버리는 건 인류의 질병임이 틀림없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화풀이라도 하듯 보도와 차도 사이로 떨어진 빗방울들을 가차 없이 쓸어버린다.

몸체가 점점 젖어가고 무거워진다. 비야 아무리 험하게 오더라도 흘러가기 마련이고, 눈 또한 제아무리 폭설이더라도 기다리면 스스로 녹는 법. 그까짓 환경 문제는 그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닐 것이다. 어차피 그는 평범한 빗자루일 뿐. 그는 다시 작업으로 돌아간다.

갑자기 이상스런 물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살펴보니 하나둘이 아니다. 길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다. 아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떤 것은 먹다 남은 음식처럼 신문지에 싸여 몰래 버려져 있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기에 십상이겠다. 잘 보자면, 형태도 색도 조금씩 각각 다르다. 그중엔 새빨간 게 가장 많았지만 그래도 각양 색색이다. 직접 만져보기로 한다. 어쩌나! 딱딱하고 변질되어 있어 징그럽기 짝이 없다. 아니, 이렇게 많이 버려져 있는 걸 보면 어떤 이들은 하나 이상의 혀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일까? 이처럼 많이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지 몰랐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으니.

몇 블록 지나기가 무섭게 더 괴상한 것들이 발견된다. 아까 그것들이 만들어낸 것인지, 또는 높은 빌딩에서 떨어진 쓰레기인지 분간할 수 없다. 조심스레 툭툭, 건드려본다. 죄다 곪아 있는 데다가 냄새도 고약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몇몇 까칠한 단어들이다. 전제주의, 독재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틈새마다 거친 욕들도 섞여 있다.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한 무기처럼 누군가 휘두르고 놀다가 내던지고 간 것들임이 틀림없다.

세상에! 뭐 이런 쓰레기들을 만들려고 인간으로 태어났단 말인가? 딱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빗자루인 주제에 뭔가를 판단하려는 건 좀 뭐하지만서도. 돌이켜보자면 지금 이 도시를 주물럭거리는 건, 세상을 미치게 놀아나게 하는 건, 언제나 그 몇몇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걸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자면 한이 없을 것 같다. 그에게 맡겨진 것은 청소이니 군소리 말고 일이나 하는 수밖에.

어느덧 비가 멈추었다. 그래도 그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사악사악,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를 낸다. 날이 밝아짐에 따라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꺼진다. 주변은 이제 세수를 막 끝낸 것처럼 단정해졌다. 잠시일지언정 길거리는 어린아이 머리카락처럼 빗질이 잘 되어 있다.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 햇살이 무대의 조명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일을 끝낸 그곳은 바로 시청 앞 광장이었다. 보잘것없고 평범한 빗자루의 길고 긴 작업이 멈춘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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